‘헤럴드 기업포럼’서 기조연설
5월 한강 작가와 ‘호암상’ 수상
허준이·한강 알아본 안목 놀라워
AI 연구 노벨상 수상 교수들 존경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는 1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노벨화학상 및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며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설명 가능한 AI’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섭 기자 |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 과학 분야에서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올해 삼성호암상 수상자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주관한 ‘헤럴드 기업포럼 2024’의 기조연설을 위해 5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는 지난 14일 포럼을 하루 앞두고 본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야기가 나오자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큰 기쁨을 표하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한강 작가와 호암상 수상...트위터도 팔로우 해”
앞서 한강 작가는 올해 5월 열린 호암재단 주관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예술상을 수상했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정신을 기려 지난 1990년 제정된 삼성호암상은 매년 ▷과학상(물리·수학부문, 화학·생명과학부문) ▷공학상 ▷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를 선정해 각각 메달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하고 있다.
한강 작가와 함께 이수인 교수도 올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삼성호암상 34년 역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공학상을 수상해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 교수는 삼성호암상 시상식 당시 한강 작가와 나란히 서 있는 기념 사진이 이번에 국내외에서 재조명을 받으면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시상식 당일 수상자들과 함께 리허설을 하고 점심식사도 한 방에서 같이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시상식 때 한강 작가님께 인사드리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작가님은 말씀이 많지 않으셨고 주로 (사회봉사상 수상자인) 제라딘 라이언 수녀님과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셨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한강 작가에 대한 ‘팬심’도 숨기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한강 작가님 트위터를 팔로우는 했는데 아직 DM은 안 보냈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40대 초중반에 있는 제 친구들 중에서도 ‘채식주의자’ 등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며 “저의 삼성호암상 수상을 축하해주는 친구들은 오히려 한강 작가님과 제가 같이 상을 받는 것에 놀라워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만난 친구들이나 박사과정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 공학 계열이지만 한강 작가님을 잘 알고 작가님의 작품들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올해 5월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2024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재용(앞줄 왼쪽부터) 삼성전자 회장, 제라딘 라이언 아일랜드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수녀(사회봉사상), 피터 박 하버드의대 교수(의학상) 부부, 랜디 셰크먼 UC버클리 교수,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 이수인(뒷줄 왼쪽부터) 미국 워싱턴대 교수(공학상), 한강 소설가(예술상), 킴벌리 브릭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고 남세우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연구원 배우자,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혜란 다윈 미국 뉴욕대 교수(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부부. [호암재단 제공] |
“허준이 교수·한강 작가 먼저 알아본 호암상 대단해”
노벨상에 앞서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하며 예술상을 안긴 삼성호암상의 안목과 권위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놀라움을 표했다. 지난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언급했다. 허준이 교수는 필즈상에 앞서 2021년 삼성호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교수는 “허준이 교수님에 이어 이번에 한강 작가님까지, 삼성호암상을 받으셨던 두 분이 이후 큰 상을 타신 것을 보면 삼성호암상의 안목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한국과 교류가 그렇게 많지 않고, 한국에서 강연도 많이 하지 않았다”며 “한마디로 연줄이나 커넥션이 없는데 나이도 어린 저를 공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놀라웠다. (삼성호암상) 심사위원회가 정말 열려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호암재단에 따르면 2024 삼성호암상 심사위원회는 학술 부문의 경우 국내 전문가 22명,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된 해외 석학 10명으로 구성됐다. 이와 별도로 외국 전문가 65명이 자문 평가단으로 평가에 참여했다. 4개월 간의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 후보자를 제청하면 삼성호암상위원회는 이를 다시 심의해 수상자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교수는 삼성호암상 시상식 당시 수상소감에서 공학자의 남다른 책임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과학이나 공학을 진로로 택했다면 책이나 논문에 몰두하지 말고 폭넓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현대과학은 팀 사이언스다. 연구 펀딩이 정말 중요하며 좋은 연구원을 리쿠르팅(채용)하고 연구성과를 효과적으로 프로모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의 목표는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도 아니고, 박사학위나 좋은 오퍼를 받는 것도 아니다”며 “과학과 공학의 목표는 인간의 지식영역과 능력의 한계를 넓히고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연구로 인류 문제 해결하고파”
한강 작가와 이 교수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하면서 닮은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삼성호암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주변에서는 이 교수의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올해 노벨화학상과 노벨물리학상이 사상 최초로 인공지능(AI) 분야 연구자에게 돌아가면서 AI가 과학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교수 역시 AI 판단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AI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해 세계적인 AI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설명 가능한 AI’를 연구해온 이 교수는 평소 AI 모델이 왜 그러한 결과를 내놨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AI를 더 안전하게 쓰고, 신뢰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설명 가능한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설명 가능한 AI’가 AI 시스템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 줄 도구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미 헬스케어와 바이오, 금융 등의 분야에서 이 교수의 방법론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이 교수는 “이번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는 저희 워싱턴대 교수”라며 “저는 당연히 그 분이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학교 교수에 대해서도 “현대 AI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며 “제가 학부 때부터 AI를 공부했는데 당시는 ‘AI의 윈터(겨울)’였다. AI에 대한 관심이 낮았고 쓸데없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AI 연구를 한 힌턴 교수에 대해 평소에도 어마어마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설명 가능한 AI’에 대해 “AI 판단이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 높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하며 “‘설명 가능한 AI’는 각종 질병을 예측·설명하는 AI 시스템 및 질병 치료법 개발 등 의료 분야에서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1년에 한 번 한국을 찾는다는 이 교수는 올해 삼성호암상 시상식과 ‘헤럴드 기업포럼 2024’를 위해 벌써 두 차례 모국을 방문했다. 학기 중에 잠시 시간을 내 한국에 온 이 교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설명 가능한 AI’ 연구에 지속적으로 몰두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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