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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케이블 공장 풀가동도 모자라” AI 수요 폭발에 미국 수출 대박 [K-전력기업 대해부⑤]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둘러보니
도체 생산부터 완제품 시험까지 원스톱
부가가치 높은 초고압케이블 생산 주력
미국향 제품으로 올해 6300억 신규 사업
인근 해저케이블1공장 1단계 가동 시작
대한전선 관계자가 당진케이블공장에서 초고압 케이블 생산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헤럴드경제(당진)=김은희 기자] “당진공장이 지어진 이래 지금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요.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대기 물량이 단계마다 역대급으로 꽉 차 있고 완제품도 나오면 납품하느라 바쁩니다. 수주 상황을 보면 풀타임 가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요.”

지난달 26일 찾은 충남 당진시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내 초고압 공장은 널찍했지만 거대한 크레인과 각종 생산·시험 설비, 케이블 보관과 운반에 사용되는 크고 작은 드럼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전선을 뽑고 꼬고 모으는 주요 작업을 기계가 하다 보니 공장에는 작업을 세팅하고 확인하는 소수의 직원이 단계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쉼 없이 들려오는 굉음은 공장이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했다. 연간 생산능력만 2만9220톤으로 세계 최대인 이곳 초고압 공장의 현재 가동률은 100%다.

최영민 대한전선 초고압기술팀 차장은 “도체 생산부터 완제품 시험까지 모든 공정을 원스톱으로 24시간 수행하고 있다”면서 “초고압 케이블 생산실적은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있는데 올해 특히 물량이 많아 최고치를 찍을 것 같고 내년까지도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전선 관계자가 당진케이블공장에서 초고압 케이블 생산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2012년 문을 연 당진케이블공장은 대지면적만 축구장의 약 50배인 35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케이블 공장이다. 초고압, 산업전선, 통신, 소재, 버스덕트까지 5개의 단위 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도시나 대형 산업단지의 전력망에 주로 쓰이는 초고압 케이블 공장이 가장 크다. 초고압 케이블은 높은 전압을 견디기 위한 여러 특수 공정이 필요해 중·저압 케이블에 비해 부가가치가 5배 이상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전선은 1985년 국내 최초, 세계 아홉 번째로 154㎸ OF(Oil-filled·유입) 케이블 개발에 성공하며 초고압 시대를 열었고 절연 소재로 가교폴리에틸렌(XLPE)을 사용한 초고압 XLPE 케이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대한전선 관계자가 당진케이블공장에서 소재 생산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대한전선 당진케이블공장 내 소재 공장에서 구리선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 [대한전선 제공]

초고압 케이블 제조 공정은 ▷도체 가닥을 더 가늘게 뽑는 신선 ▷소선 여러 가닥을 꼬아주는 연선 ▷연선된 도체를 원형으로 모아주는 집합 ▷도체에 흐르는 전기가 누설되지 않게 막고 덮는 절연▷절연층 보호를 위해 테이프를 감는 테핑 ▷절연체 보호를 위해 바깥을 알루미늄이나 납으로 덮는 시스 ▷부식 방지를 위해 폴리에틸렌(PE) 또는 폴리염화비닐(PVC)을 코팅하는 방식(防蝕) ▷검사의 순으로 진행된다.

도체를 일관성 있고 힘 있게 가공하는 게 중요한 데다 중간중간 길게는 열닷새나 건조해 줘야 하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장기전이다. 공정을 거치면서 도체는 점차 두꺼워지고 또 길어진다. 연선·집합 과정에서 도체를 잇는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선을 적어도 6번, 많으면 9번 드럼에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케이블은 완성된다.

초고압 케이블 구조 [대한전선 제공]

케이블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단연 절연이다. 초고압 공장에서는 3대의 VCV(수직연속압출시스템)와 2대의 CCV(현수식연속압출시스템)가 절연 작업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당진공장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160.5m 높이의 VCV 타워는 케이블에 절연체를 균일하게 입히는 데 특화돼 있다. 케이블을 수직으로 내려뜨리면서 성형하기 때문에 도체 겉에 XLPE를 피복 압출할 때 아래로 처지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최 차장은 “도체를 내리면서 반도전층, 절연층, 반도전층을 차례로 입히는 삼중 압출을 한꺼번에 하는데 초고압을 견뎌야 하는 케이블 제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단계”라며 “단 한 톨의 이물질도 들어가지 않도록 항온, 항습의 청정실(클린룸)로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전선 당진공장 전경. 중앙으로 160.5m 높이의 VCV(수직연속압출시스템) 타워가 자리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VCV 타워 21층에 있는 운영실에서는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라인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 케이블에 고분자를 녹여 입히고 서로 단단히 엮이도록 반응시킨 뒤 냉각시키고 있었다. 물론 자동화돼 있어 엑스레이(X-ray)를 통해 절연재가 원하는 두께로 균일하게 도포됐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게 주작업이다. 절연 불량은 큰 전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보다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날은 VCV 3개 라인 중 2곳에서 미국향 제품을 생산 중이었다. 최근 국내외 수주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VCV 절연을 포함한 모든 공정 라인을 완전 가동하고 있는데 고객사 인도시기에 맞춰 단계별 생산 일정을 빠듯하게 세워 관리하고 있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전언이다.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가 많은 미국은 대한전선이 특히 공을 들이는 시장으로 올해만 6300억원 규모의 신규 사업을 따냈다.

대한전선 관계자가 당진케이블공장에서 초고압 케이블 생산을 점검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대한전선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매출 1조6529억원, 영업이익 662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연간으로는 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증권사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력업계가 호황기에 진입한 덕분이고 그에 앞서 대한전선이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해 온 결과다.

김현주 대한전선 생산/기술부문 전무는 “전선 분야는 국가 기간산업이라 수요가 꾸준한 경향이 큰데 지난해부터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립 등으로 물량이 급격히 많아졌다”며 “유럽이나 미주의 경우 지중케이블 교체 시기가 돌아오기도 했고 재생에너지 운송을 위해서도 케이블이 필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전선 당진해저케이블 1공장 전경 [김은희 기자]

당진케이블공장에서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당진항 고대부두 인근에서는 대한전선의 새로운 심장이 될 해저케이블 1공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내부망 해저케이블 생산을 위한 1단계 설비는 이미 지난 6월 완비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첫 양산에도 성공했다. 2020년 3월 해상풍력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하며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지 4년 반 만이다.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해저케이블 시장에 비교적 단기간에 진입하게 된 건 대한전선이 1941년 조선전선으로 시작해 차곡차곡 쌓아온 저력 덕분이다. 오랜 기간 유동성 위기를 겪은 탓에 대규모 투자가 늦어졌지만 2009년부터 해저케이블 사업에 뜻을 두고 연구를 진행해 왔다.

대한전선 관계자가 지난달 중순 당진해저케이블공장 첫 양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대한전선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 조감도 [대한전선 제공]

공장에서는 세 개의 두꺼운 케이블 가닥을 꼬아 초고압 교류(AC) 해저케이블로 만드는 수직 연합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라인을 따라 외장 작업까지 하면 노란 테이프를 두른 해저케이블이 완성된다.

공장 바깥에선 5000톤급 턴테이블에 케이블을 감기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 해저케이블 1공장은 항구가 맞닿아 있어 케이블 선적 경로가 짧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완성된 케이블이 턴테이블을 채우면 포설선에 빠르게 적재해 전남 영광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 현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외부망 해저케이블을 위한 2단계 설비도 골조는 올라간 상태였다. 대한전선은 내년 상반기 준공해 1공장 완전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해저케이블 2공장 계획도 이미 세웠다. 외부망 및 HVDC 해저케이블 생산을 위한 최첨단 VCV 설비를 갖춘 공장으로 건설할 예정으로 현재 부지 선정 마무리 단계다. 2공장은 2027년 3분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송종민(왼쪽 두 번째) 대한전선 부회장이 당진해저케이블 1공장 1단계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대한전선 제공]

해저케이블공장에는 경영진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저케이블 시장을 글로벌 전력망 산업에서 가장 장래가 유망한 분야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송종민 대한전선 부회장은 틈날 때마다 해저케이블공장 건설 현장을 직접 찾는데 이날도 현장을 둘러보며 진행 상황을 꼼꼼하게 살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선회사로서 70년간 쌓아온 기술 기반이 있기에 다소 늦은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도 시행착오 없이 해저케이블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가 됐고 머지않아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 개발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케이블&솔루션 시장에서 기술력 면에서도 품질 면에서도 믿을 수 있는 회사로 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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