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역사 훼손” 대법 상고심서 뒤집기 총력
“받은 적 없다” 300억 비자금 유입설도 논란
“정경유착·비자금으로 SK 성장? 참담한 심정”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에 참석하며 이혼소송 2심 후 첫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최 회장은 SK그룹 및 재계 활동을 예정대로 이어가며 재산분할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다. [연합] |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소송 2심 판결 결과에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대법원 재판에서는 SK그룹 성장 과정에서의 ‘정경유착’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SK그룹은 재판부가 해당 의혹을 인정한 데 대해 “구성원의 명예와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SK그룹의 역사를 훼손했다”고 보고 향후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를 뒤집는데 총력을 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이 바로잡겠다고 강조한 ‘진실’ 역시 이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2심 판결에서 언급된 SK그룹의 정경유착 의혹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으로 유입됐는지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특혜가 있었는지 여부 등이다.
해당 의혹을 2심 재판부가 기정사실화으로써 최 회장 재산 증식 과정에서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했고, 그 결과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지목된 만큼 관련 의혹이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1심에서는 최 회장의 보유 주식을 최종현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결혼 전 보유 재산)으로 보고 분할대상에서 제외했었다.
통상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는 사실관계보다는 원심의 법리적 문제만 따지지만, 재산분할의 대상이 된 ‘특유재산’ 범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치열한 법리적 논쟁이 뒤따를 것이란 예상이다. 대법원 상고심이 사실상 ‘사실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노 관장의 부친인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이 최 회장의 부친인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다는 노 관장 측의 주장을 인정했다.
근거로는 노 관장 측이 제시한 50억원 약속어음 6장과 김옥숙 여사(노 관장의 모친)의 메모를 들었다. 또, SK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와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노 전 대통령이 보호막 역할(무형적 기여)을 한 것으로 봤다.
최 회장 측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6공(共)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 혜택은 전혀 입증된 것 없고,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며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역시 최종현 선대 회장이 개인 자금과 계열사 자금을 사용했으며, 이동통신사업 진출의 경우 노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라는 이유로 사업권을 한차례 반납하는 등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재계에서는 특히, 법원이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고 인정함에 따라 그룹 전반의 이미지 훼손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 내에서는 SK텔레콤 탄생을 정권 특혜의 산물로 봤다는 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전날 오전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 임시회의에서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라며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어렵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SK가 성장한 것처럼 곡해한 법원 판단에 참담한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SK텔레콤 을지로 사옥. [SK텔레콤 제공] |
실제 SK그룹은 그동안 이동통신사업 진출을 두고 끊임없이 특혜 논란에 시달려왔다.
최종현 선대 회장은 1984년 선경그룹 내 미주경영기획실 산하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정보통신분야 진출을 준비해왔다. 이후 1989년 미국 현지법인 유크로닉스, 1990년 선경정보시스템, 1991년 선경텔레콤을 잇달아 설립했다.
이듬해인 1992년 4월 체신부가 제2이동통신사업 허가 신청 게시를 공표하자, 선경텔레콤은 같은 해 6월 대한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권 획득에 참여했다. 당시 대한텔레콤은 36개 항목 총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획득하면서 2위 신세기이동통신(7496점), 3위 제2이동통신(7099점)을 제치고 최종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관계라는 점이 논란이 되며 비판이 거세게 일자 사업권 획득 일주일 만인 1992년 8월27일 제2이통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결국 SK그룹의 사업권 획득을 반대했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3년에야 이통사업 진출을 재추진하게 됐다. 같은 해 12월 체신부는 제1이통 사업자였던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와 제2이통 사업자 선정을 동시에 추진하며 특혜 시비를 의식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사업자 선정을 공식 의뢰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최종현 선대 회장은 또다시 특혜 시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제2이통 사업권 참여를 포기하고, 대신 제1이통(한국이동통신) 인수전에 공개입찰을 통해 참여했다. 약 600억원으로 지배주주가 될 수 있었던 제2이통 사업을 포기하고, 4271억원을 들여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것이다.
전경련은 제2이통으로 포항제철을 1대 주주로, 코오롱을 2대 주주로 하는 신세기이동통신을 선정했고, SK텔레콤이 인수한 한국이동통신은 1997년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한 후 2002년 1월 신세기이동통신을 합병완료 했다.
최 회장은 2심 판결이 나온지 나흘 만인 전날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SK 계열사 CEO들도 앞으로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결연히 대처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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