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가운데 스스로 경제적 상(上)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의 3% 정도이고 실제로는 경제적 상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85%가 스스로를 중·하층으로 여기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통상 소득 상위 20%를 상층으로 분류하는데 상층 10명 중 8명 이상이 자신을 중산층이나 하류층으로 본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경제의 허리이자 정책의 주요 가늠자가 되는 만큼 제대로된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6일 내놓은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객관적 의미의 중산층 인구비율은 2011년 51.9%에서 2021년 57.8%로 10년간 5.9%포인트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 소득의 75~200%’를 중산층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KDI가 지난해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스스로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월 소득이 700만원을 넘는 고소득 가구 중에서도 76.4%는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12.2%는 하층으로 인식했다. 심지어 소득 상위 10%, 자산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 중에서도 각각 71.1%, 78.4%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했다.
상층이면서 중산층으로 평가절하한 이유로 연구진이 꼽은 것은 소득 여건 악화다. 실제 전체 소득에서 소득 5분위(상위 20%)의 점유율은 지난 10년(2011~2021년) 사이 4.3%포인트(44.3→40%) 감소했다. 반면 1~4분위는 모두 점유율이 상승했다. 중산층 위기론은 실제 중산층이 줄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고소득층의 경제적 지위 하락이라는 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상층의 평가절하가 심리적 요인이 크다는 데에 착목, 이들을 ‘심리적 비(非)상층’으로 분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모든 정부는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데에 정책 목표를 두고 있다. 정책의 방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결정할 때도 중산층은 주요 지표가 된다. 그런데 실제 상층이면서 중산층으로 여기고 목소리를 높여 정책을 유리하게 끌고 간다면 하층에 집중해야 할 자원이 모자라고 사회 균형을 해칠 수 있다.
중산층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세심하게 설계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중산층도 여러 층위가 있다. 하층쪽에 기울어진 중산층이야 말로 엄밀한 의미의 중산층일 가능성이 높다. 계층 평가절하가 상대적 결핍과도 무관치 않다는 점도 살펴야 한다. 상위 1~3%와의 부의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월급 700만원을 넘게 받아도 상층으로 인식할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과대 포장된 목소리 대신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