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시장이 뜨겁다. 1억원 돌파 이후 다소 숨고르기를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 기세가 당당하다. 비트코인의 글로벌 시가총액은 이미 글로벌 은시장가치를 추월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전체 거래액은 코스피 거래대금의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비트코인 투자로 한 몫 잡았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과연 지금이라도 이렇게 달리는 말에 올라타야 할까, 더 큰 조정을 기다릴까. 아니면 비트코인 투자는 투기일 뿐이라 치부하고 꿋꿋이 외면할까?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므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수요가 공급보다 더 빨리 늘어난 것을 드러낸다. 최근의 비트코인 상승세는 반감기와 ETF 허용 등 공급은 줄이고 수요는 늘리는 호재에 영향을 받았다. 비트코인 반감기란 채굴을 통해 10분 동안 새로 출현하는 비트코인 개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을 처음 고안할 때 4년마다 반감기가 오도록 만들어졌는데 올 2월부터 6월 사이에 반감기가 온다고 한다. 반감기가 온다는 것은 공급 증가율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므로 수요 증가율이 일정하다면 가격은 오를 것이다.
2024년 1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비트코인 현물ETF를 승인한 것은 비트코인 수요를 늘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투자자들은 이제 전자지갑을 보유하면서 비트코인을 직접 구매할 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가 판매하는 현물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매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특히 비트코인이 공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 받았다는 인식은 수요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나 기관투자자들 자금도 ETF를 통해 비트코인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쉬워졌다.
이러한 요인들이 비트코인 가격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상당 부분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비트코인 매입을 주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비트코인이 화폐 지위를 갖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산 내지 가치저장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여전히 취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근본적으로 화폐가 되기 어렵다. 여기서 화폐는 가치척도와 지불수단을 의미한다. 화폐는 다른 사물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다른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비춰주고 표현하는 척도이다. 그런데 울퉁불퉁한 거울이 제대로 다른 사물의 모습을 비출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가치가 변하는 것이 다른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표현하는 잣대가 되기는 어렵다. 또한 지불수단으로서의 유용성도 매우 낮다. 커피 한잔 가격을 지불하는데 10분이 걸린다면 어느 누가 그것을 지불수단으로 쓰려 하겠는가? 그렇기에 오늘날 비트코인은 더 이상 가상화폐로 불리지 않고 가상자산으로 불린다. 기존의 통화가 국제 결제나 송금에 많은 비용과 불편을 수반하는 것은 사실이고 비트코인이 이 점에서 부분적인 장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해결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조만간에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또는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다른 방식을 통해 해결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는 화폐로서의 수요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가치저장수단, 즉 소유자의 재산을 미래로 옮겨 놓는 수단에 대한 수요다. 이 세상에 가치저장수단은 무수히 많다. 금, 그림, 부동산, 예금, 주식, 화폐 등등. 비트코인이 이러한 다른 자산에 비해 가치저장수단으로서 더 좋은지 여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것이다.
금이나 부동산처럼 내재가치가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비트코인은 별로다. 비트코인은 나토시 사카모토라는 신원미상의 인물이 고안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시스템 구축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디파이(DeFi)나 토큰증권(security tocken) 같이 미래 금융을 선도할 것처럼 여겨지는 분야에서도 제한적인 의미만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산이 꼭 내재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금은 내재가치가 없지만 자산으로 의미가 있다. 남들이 원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림의 경우에도 내가 아무리 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더라도 남들이 인정할 것이라 믿으면 나는 기꺼이 살 것이고 덩달아 가격도 오른다.
비트코인도 비숫하다. 익명성이 강하고, 국제 이동에 대한 제약이 크지 않다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중요한 점은 남들이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인정하다고 내가 믿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볼 때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된다면 비트코인은 진정한 자산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고 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반대로 비트코인이 지닌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너도 나도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내재가치가 취약한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위축되면서 가격은 폭락하고 그동안 쌓아 올린 재산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러한 믿음의 변화가 불러일으킬 가격의 변동성 위에서 곡예를 즐길만한 사람만이 비트코인 투자에 동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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