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리더와 석학이 한데모여 인류 현안을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에서 최초로 원전이 메인 테마에 오른 것은 주목할 일이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포럼에선 올해 처음으로 원전을 내세운 에너지 주제의 세션이 열렸다. 지금까지의 단골 에너지 화두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쪽이었다. 풍부한 일조량과 풍력·수력을 갖고 있는 유럽 국가가 창립 멤버이기도 하고, 그들은 일찌감치 재생에너지를 앞세운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왔기에 원전 얘기는 금기시돼 왔다. 원전은 트러블 메이커(문제아), 심지어 지구를 망치는 패륜아 취급까지 당했다.
다보스포럼에서 원전이 부활한 것은 화두가 ‘인공지능(AI)시대’에 쏠렸기 때문이다. 포럼에선 AI가 혁명적으로 바꿀 미래 세상의 모습과 예상되는 숙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이뤄졌다. 그 숙제 중 하나가 ‘에너지 부족’이다. AI시대는 반드시 가야 할, 거부가 용납되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진정한 AI세상을 누리려면 지금보다도 막대한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딥러닝을 비롯해 연산은 물론 고도의 추론과 생성까지 수행하는 AI를 활성화 하려면 기존 상상을 뛰어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챗GPT(오픈AI), 제미나이(구글) 등 첨단 AI를 구동하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요된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2027년 AI는 연간 85~134Twh(테라와트시)에 달하는 전력을 쓴다. 세계 전력 소비량의 0.5% 수준으로, 네덜란드가 1년에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하다. 2050년 쯤엔 전력소비량이 지금보다 1000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현재로선 감당키 어려운 ‘전기 먹는 하마’란 뜻이다.
한때 원전을 국가 에너지 리스트에서 지웠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포럼에서 “AI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원전 확대 추진 상황을 소개한 것은 그래서다. 인공지능 선두주자인 오픈AI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AI시대의 에너지 돌파구로 ‘핵융합 발전’을 꼽기도 했다.
다보스포럼에서 살아난 원전은 우리로선 반가운 일이다. 한국은 특히 미래 청정에너지원인 소형모듈원전(SMR)에 강하다. 한덕수 총리는 포럼에서 이를 소개했는데, 참석자들의 신원전(SMR)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컸다고 한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활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물론 AI시대 에너지를 원전에만 올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 정부에서 말썽이 난 탈(脫)원전, 친(親)원전을 떠나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적절한 균형이 최고의 선(善)이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와의 조화는 백년대계 에너지 플랜에 필수적이다. 다만 AI발(發) ‘원전 초청장’엔 이왕이면 주빈 자격으로 참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