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0일 시한으로
1500억원 이행강제금도 신설
한진칼 투자금 성공회수 위해
미·일 추가 이권포기요구 경계
경쟁력 추가훼손 제동 걸 수도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실패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매각계약 시한을 못박고 계약해지시 이행강제금을 받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부분 매각 결정으로 유럽연합(EU) 승인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남은 미국과 일본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룹 경영권이 걸린 기업결합인 만큼 조원태 한진칼 회장은 ‘무엇이든 포기’하겠지만 과연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핵심 경쟁력 추가 훼손을 얼마나 용인할 지가 관건이다. 아시아나항공이 경쟁력을 잃은 채 기업결합이 이뤄지면 산은의 한진칼 투자금 회수도 어려워질 수 있다.
▶마지막 시한 2024년 12월20일…추가 연장 없을듯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부분 매각을 결정한 11월 2일 대한항공과 산업은행(또는 아시아나항공)과의 인수계약 내용도 변경됐다. 기존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기간 내에 필요적 정부 승인의 취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인수인(대한항공)의 요청에 따라 거래종결기한은 인수인과 한국산업은행(또는 아시아나항공) 상호 합의에 의해 3개월 이내의 범위 내에서 추가로 연장되며, 본 단서 규정은 다시 연장된 기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됨.
바뀐 내용은 이렇다.
“유럽집행위원회로부터 조건부 기업결합승인을 받은 후 2024년 12월 20일(당사자들은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근시일 내에 충족될 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한해서만 상호합의로 연장할 수 있음)까지 거래종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또는 그 이전에 기업결합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 확정 또는 확실시되는 경우 계약은 해제됨”
요약하면 이전에는 필요한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3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계약에서는 내년 12월 20일까지 종결되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된다는 뜻이다. 더 줄이면 시한을 못박은 셈이다.
▶화물까지 팔 정도면…미·일, 아시나아항공 추가적인 이권포기 노릴수
대한항공이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영국과 유럽의 주요 슬롯은 물론 알짜 사업부(아시아나항공 화물부분)까지 매각하기로 한 사실을 미국과 일본의 독점규제 당국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들 나라 항공업계 사정을 한번 살펴보자.
미국은 각자 15~20%의 시장을 점유한 4개 대형항공사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주요 대도시인는 LA,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호놀룰루 등 5개 도시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이 아주 높다. 미국 관련 당국이 독점을 우려할 만한 노선들이다. 대한항공이 또 아시아나항공의 이들 노선 슬롯을 내놓는다면 미국 대형항공사 입장에서는 이권을 확장할 좋은 기회다.
미국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이자 한진칼 지분10% 이상 가진 우호주주다. 합병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델타항공과 경쟁하는 유나이티드항공의 입장은 다르다. 합병이 성사되면 같은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지게 된다. 동맹을 그냥 잃을 수는 없다. 대한항공의 시도를 저지하던지 최대한 많은 이권을 확보해 손실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이 같은 입장은 미국 항공업계 전반의 이익과도 다르지 않다. 미국 법무부가 합병승인을 저지하기 위한 소송을 일단 제기한다면 내년 12월 20일 이전에 결론이 나기 어렵다. 미국도 이번 기업결합에 조원태 한진칼 회장의 경영권이 걸려 있음을 모를리 없다. 독점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고 법무부의 소송까지 저지하려면 더 많은 ‘판돈’을 걸어야 할 수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 지위를 두고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다. 일본 최대항공사인 전일본공수는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이다. 동맹을 잃게 되는 이번 합병이 달가울 리 없다. 일본 항공사 가운데는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 소속이 없다. 일본 역시 최대한 많은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결합 승인여부를 지렛대로 사용할 만하다.
▶산은, 대한항공서 중도금 당겨 받고 이행강제금도 신설
2일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1조원대 자금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원이라고 하기 좀 애매하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1조8000억원의 신주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계약금 3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영구전환사채(CB) 인수 형식으로 이미 지급했다. 중도금 4000억원은 애초 유상증자 납입일 다음 영업일에 지급하기로 했는데 이번에 이를 당겨 준 것이다. 계약기간이 연장된 데 따른 일종의 기회비용으로도 볼 수 있다.
신규 영구CB 3000억원 인수도 엄밀히 신규가 아니다. 계약금 명목으로 인수했던 기존 영구CB 3000억원을 상환 받기로 해서다. 이전 발행 분의 금리만 낮추는 일종의 차환발행이다. 결국 1조8000억원 가운데 3000억원을 미리 냈는데 이를 7000억원까지 늘리기로 한 게 ‘지원’의 실체다.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것뿐이다. 기업결합이 실패하면 대한항공이 회수해 갈 것이란 뜻이다.
진짜 의미 있는 대목은 계약금 3000억원 가운데 1500억원을 EU승인 직후 이행강제금으로 전환한 부분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승인을 얻지 못해 계약이 해지되면 대한항공이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다. 내년 12월 20일까지 기업결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산은의 의지가 엿보인다.
▶산은, 경쟁력 잃으면 투자회수 어렵다 판단한듯
그러면 산은은 왜 내년 12월 20일까지 기업결합이 성사되지 않으면 계약해지를 한다는 강수를 둔 것일까?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다는 비판까지 감수하고 산은은 한진칼에 8000억원(신주인수 5000억원, 교환사채 인수 3000억원)을 투입했다.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면 더 큰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인수 가격인 주당 7만800원 보다 주가가 높아져야 한다. 경영권 분쟁 외에는 한진칼 주가가 이 수준을 넘을 때는 없었다. 기업결합으로 실적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회복하기 어려운 주가 수준이다. 기업결합이 성공하려면 가급적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이 잘 보존되어야 한다.
조원태 회장은 “무엇을 포기하든 (기업결합을) 성사시킬 것”이란 입장이지만 산은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조 회장이 미국과 일본의 독점규제 당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이권을 내주려 한다면 산은 입장에서 마냥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 이권 포기에 따른 비판 여론이 적잖은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지난 정부 때 결정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동걸 전 회장의 결정으로 현재의 산은이 굳이 표적이 될 이유는 없다. 기업결합이 되는 안되든 언젠가 산은의 한진칼 지분은 팔아야 한다.
실적이 좋아지든 경영권 경쟁이 재현되든 산업은행은 성공적 투자회수가 중요하다. 조 회장 등이 가진 한진칼 지분은 약 34%다. 2대주주인 호반건설(11.6%)은 팬오션 지분(5.85%)를 인수할 예정이다. 산은 지분(10.58%)이 조 회장을 떠나면 또다시 경영권 경쟁이 재현될 수도 있는 구조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