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이례적 美 유력 언론발 보도
바이든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는데…
'불량국가' 북한 유지해 국익 극대화?
日도 남북갈등에 국익 극대화 기대↑
北발사체에 "탄도미사일" 즉각 반응
'남북 군사합의' 韓정부 신중 대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수도 평양에 주택 1만세대를 짓는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연합] |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잠잠했던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나서면서 또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시작은 지난 21일 북한이 서해상으로 발사한 순항 미사일 2발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발표는 군 당국이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번 발사 사실은 유력 미국 언론에 의해 뒤늦게 24일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이 순항 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미국 언론이 이 사실을 사흘 뒤에 발표한 것, 이 2가지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2가지는 한미 군 당국이 원했던 상황을 180도로 뒤집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번에 쏜 것은 순항미사일이다. 북한이 이 미사일을 쏜 행위는 국제 규범에 저촉되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보도 직후 이와 관련 "국방부에 따르면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일"이라며 "그들(북한)이 한 것으로 인해 새로 잡힌 주름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행동에 대해 일상적인 일이며 이로 인해 새로 생긴 문제는 없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북한 순항미사일에 바이든은 '노 프라블럼'=북한이 순항미사일을 쏘자, 한미 군 당국은 관련 정황을 파악했지만 이런 이유를 고려해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흘 뒤 미국의 유력언론 워싱턴포스트(WP)가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전에 없던 수상한 조합이다.
보도 이후 한미 군 당국은 지난 21일 오전 평안남도 온천 일대에서 북한군이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4월 14일 이후 11개월여만으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정부와 군 관계자는 "순항미사일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다"라면서 "우리 군은 한미간 긴밀한 공조 하에 실시간 파악하고 있었으며 관련 사항을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한미 군 당국이 종결한 사안을 미국의 정가에서 재활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보고 과정에서 며칠 후 관련 정보를 입수한 미 정계나 당국 인사가 소기의 목적을 위해 이 카드를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이다. 소기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이 알려진다면 일반 대중들은 북한이 과거의 행태를 버리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순항미사일인지, 탄도미사일인지 가리지 않는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대화에 나서려는 북한의 진정성은 의심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동의한 이른바 '싱가포르 합의'의 계승 여부도 관심사다.
◆북미 싱가포르 합의 수용여부 촉각…미국의 플랜B는?=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강조한 상황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이 참여한 '2+2회의' 뒤 언론 인터뷰에서 북미 싱가포르 합의에 대해 "북미 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 정착,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원칙은 앞으로의 협상에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은 미국 측에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지 않으려 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카드 중 하나는 북한이 과거처럼 미사일을 쏘며 위협하는 국제적 '깡패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뒤집기를 전방위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책 뒤집기가 미국의 국익에 충돌할 경우, 일부 계승도 한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책 계승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으로서는 세계 패권국 자리를 놓고 도전하는 중국을 압박하는 것이 국익이다. 바이든 역시 대중 강경책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바이든이 트럼프의 유산인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할지 여부는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북한이 지금처럼 '문제적'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 미국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있다.
◆북한 존재가 필요한 세력들…'불량 국가' 있어 1석 4조=북한은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는 미중갈등 구도에서 1차적으로 완충구역으로 작용한다. 또한 북한 위협을 이유로 해외 주둔 미군으로서는 최대 규모인 주한미군을 거의 공짜로 한국에 상주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토지와 기반시설을 대부분 무상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주한미군 유지비용 중 절반 수준인 연 1조원 내외를 매년 현금으로 부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대중 견제를 최우선시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명목상 주둔 목적은 북한 견제지만, 실질적 목적은 중국을 칼날처럼 겨누고 있는 한반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에게 문제적 국가 북한의 '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의 위협을 상정해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는 최첨단 무기는 수백조원에 달한다. 미국의 방위산업 기업들은 기술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지만, 전쟁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세계에서 한국이라는 '큰손' 고객을 계속 현 상태로 남겨두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사일을 쏴대고 정상적인 외교어법이 통하지 않는 '불량 국가'가 한반도에 존재해야 하고, 그게 북한일 수 있다. 미국은 '불량 국가' 북한의 존재로 1석 3조 내지 4조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촉발된 북한 미사일 사태가 미국의 국익 극대화를 겨냥한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여겨지는 이유다.
25일 오후 서울 수서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연합] |
▶북한의 진짜 의도는 무엇?=그러면 25일 재차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어떻게 봐야할까.
일단 21일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이 미지근한 상태에서 자극 수위를 한 차원 높인 것이라는 해석, 새로 출범한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을 확정짓기 전 북한에 대한 주의를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 등이 나온다.
북한은 이날 오전 7시 6분과 25분 함경남도 함주 일대에서 추가적으로 동해상으로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했다. 이 발사체를 놓고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유엔 안보리 위반이라는 비난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여전히 이 발사체에 대해 '탄도미사일'이라고 단언하지 않고 있다.
이날 오전 열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당국자들은 '단거리 발사체'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 2발로 규정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일본 정부와 극명히 대비된다.
일본의 국익은 남북의 갈등이 심화될 때 극대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이런 날선 반응은 일본 국익 극대화 차원으로 해석할 만하다.
반면, 한국 국방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북한 발사체를 평가하고 판정하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군이 발사체 평가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난해 10여차례 이어진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서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순항미사일의 경계를 오가는 다수의 신형 무기가 관측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의 신형 무기 발사 당시에도 군 당국은 여러 미사일 종류에 대해 '탄도미사일'인지 여부를 끝내 단언하지 않았다.
이러한 군의 접근법은 남북 정부당국이 상호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9월 19일 체결한 남북 군사합의 이래 현재까지 상호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
군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와 인도 순방 중인 서욱 국방부 장관은 관련 보고를 받고 '매뉴얼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하되,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잘 분석하고, 유관기관과 공조체제를 유지한 가운데 추가 발사 등에 대비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상호 신뢰감이 없다면 이와 같은 대응은 나오기 힘들다. 과거 북한의 미사일이 발사되면 군 당국은 북한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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