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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미·중 간 신냉전시대의 ‘전략적 자율성’

지난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닉슨도서관에서 한 연설은 트럼프 행정부 발족 이래 강경 기조로 변화돼온 대중 전략의 결정판이 아닌가 생각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냉전시대 닉슨 대통령이 추진했던 미·중 관계 정상화는 중국을 국제사회에 관여시키려는 목적으로 실시됐지만 지금의 중국은 국내적으로는 전체주의 체제의 성격을 드러내고, 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 이념을 확대해 글로벌 헤게모니를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국은 기존 대중 정책을 변경해 불신하면서 검증하는 태도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미국의 정책에 나토 국가들과 G7 및 G20 국가들이 경제력과 외교력, 그리고 군사력을 결집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2018년 10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허드슨연구소 연설을 통해 대중 정책 전환을 주장했다. 지난해 6월에는 미 국방부에서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로 묘사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백악관은 중국에 대한 경쟁 전략의 목표와 실행 방안을 밝힌 전략문서를 내놨다. 일련의 연설과 전략문서를 잇는 폼페이오 장관의 대중관과 정책 구상은 보다 직설적이고 강경하다.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소련의 팽창주의 성향을 지적하며 그에 대한 봉쇄 전략을 제안한 조지 케넌의 장전문 같은 느낌까지 든다.

중국 정책결정자와 오피니언 리더들도 미국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7일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인민대학이 중국 내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중 관계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62%가 미국이 중국에 대해 신냉전을 도발하고 있으며, 미국 주도의 대중 봉쇄 정책 속에 응답자 다수가 결국 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휴스턴 소재 중국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미국의 조치에 청두의 미국영사관을 폐쇄하는 맞대응을 했을 것이다.

제2차 냉전시대 도래를 알리는 듯한 미·중 간 대립 격화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국가전략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평화 체제는 남북 간 신뢰 구축과 평화의 제도화 외에 한반도를 에워싼 주변 대국 간 우호적 관계 증진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과제다. 그런데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북한이 한국과 관계 개선에 응할 조짐이 멀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제2차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관계 악화를 노정하는 것은 어두운 징후가 아닐 수 없다.

미·중 간 관계 악화는 일본, 인도,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도 중대한 국제 안보 문제가 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들 국가에서 ‘전략적 자율성’ 개념하에 양 강대국의 대립 속 자신들의 국익을 확보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 전 방위대학교장 같은 일본의 식자들은 미·일 동맹 견지와 중·일 관계 안정이 일본 외교에 불가결하다고 인식하면서, 일본으로서는 양국과 대화를 지속하면서 대국관계를 안정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도 히말라야 영토 문제 등에서는 중국과 충돌을 불사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과 전략적 협력관계 및 중국과 경제 교류를 병행하는 외교를 견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국에 할 말을 하는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는 대화 채널을 지속하려 한다. 올해 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과 중국 간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를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 평화 체제의 외연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미·중 대립 격화 속에서 중견국의 위상에 부합하는 외교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이제는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외교 구상이 필요한 때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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