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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저장고도 꽉 찬다면…국제유가 어디로
수급균형 강제로 맞춰질 수도
반등에는 수요회복·감산 필요
미·러·사우디 이해 관계 첨예
트럼프 對이란 무력카드 변수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원유와 달러의 무제한 충돌.’

국제유가를 둘러싼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 간 대결구도 요약이다. 경제적 타격이 상당하지만 물러서면 국제 원유시장에서 영향력을 크게 잃게 된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무력 행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과연 원유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 21일의 마이너스 유가는 5월에는 더 이상 시장에서 원유를 사겠다는 이가 없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는 이가 아예 없다면 팔 수도 없다. 잉여 원유를 더 쌓아 둘 곳이 없는 상황이 되면 결국 생산과 수요의 균형이 맞춰지게 된다. 결국 유가 하락의 끝은 강제 감산이 될 수 있다. 가장 끝까지, 가장 낮은 값에도 최대한 가동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수요가 줄어도 기본적인 소비는 존재한다. 아직도 원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에너지원이다. 필요한 자산이다. 원유시장 자체가 붕괴되기는 어렵다.

문제는 수요다. 전문기관들은 코로나19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가 최소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3월부터 시작된 주요국의 봉쇄(lock down) 조치로 이미 올 수요 감소분 상당 부분은 이미 발생했다. 코로나19 확산 추세에 따라 수요는 더 줄어들 수도, 회복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변화는 예측이 어렵다. 가격을 움직이려면 공급변수를 건드려야 한다. 열쇠는 정치에 있는데, 상황이 꽤 복잡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 왕세자는 이븐 사우드 초대국왕 사후 첫 부자 간 왕위계승을 노리고 있다. 최근 여러 차례 왕족 숙청에 나선 것을 보면 내부 도전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끄는 사우디는 최근 비(非)OPEC 국가들의 증산이 영 탐탁지 않았다. 러시아와 미국 때문이다. 사우디를 위해서는 미국의 영향력 축소가 중요하다. 빈 살만은 오랜 전통을 깨고 왕실이 직접 원유산업에 개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가는 재선과 직결된 이슈다. 셰일가스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약 40달러로 사우디나 러시아보다 높다. 사실상 국가가 통제하는 사우디나 러시아와 달리 미국 셰일 가스는 민간기업이 대부분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여러모로 가장 불리하다. 특히 셰일 가스업체들이 발행한 채권의 부실화 가능성은 미국 금융의 아킬레스건이다. 미국의 원유업체들이 집결된 텍사스주는 38명의 선거인단을 보유, 캘리포니아(55명) 다음으로 많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장기집권 합법화를 위해 22일로 예정됐던 헌법개정안 국민투표를 연기했다. 리더십을 유지하면서 경제 회복까지 이뤄내야 한다.

전쟁 개시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했지만, 향후 전세는 1차 피해가 컸던 미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양적완화에 이어 코로나19로 또다시 무제한 달러 발권에 나서고 있다. 기축통화 발권력은 미국만이 가진 비대칭전력이다. 국제시장에서 원유는 오직 달러로만 거래된다. 통화량 증가는 곧 화폐가치 하락과 실물자산의 표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달러 발권이 늘고 있지만 달러 가치는 오르고 있다. 산유국들이 원유 수출로 충분한 달러 확보를 하지 못하면 재정부담은 물론 국내 물가불안까지 겹치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산유국 재정균형을 위한 국제유가 가격을 보자. 사우디의 손익 단가는 배럴당 50달러 선, 재정 균형 단가는 배럴당 80달러 선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8000억 달러인데, 외환보유고는 약 5000억 달러다. 러시아는 재정균형을 위한 유가가 배럴당 48달러다. GDP는 1조8000억달러인데, 외환보유고는 약 5500억달러다. 아무리 외환보유고가 많다고 해도 장기전으로 가면 엄청난 부담이다. 다른 산유국들의 사정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란은 이미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이 금지됐지만, 암암리에 중국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타격해 중동 불안을 키운다면 유가 자극요인이 될 수 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도 있다. 경제 불황의 끝에는 항상 전쟁이 이었다. 결국 말로 안 되면 주먹을 휘둘렀던 게 국제정치의 역사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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