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전 대신 항복 택하기도
당국 조치도 법적판단 필요
우리금융 낙하산 회장 우려
1868년 1월4일 16세의 무쓰히토(睦仁) 일왕은 막부(幕府) 토벌을 명령한다.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이렇게 반역자가 된다. 이후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한 요시노부는 병력들을 놔둔 채 전략 요충인 오사카(大阪)를 탈출, 에도(江戶)로 도망친다. 당시 막부군은 무장의 질과 훈련상태에서는 신정부군에 열세였지만, 병력은 여전히 압도적 우위였다. 이 일로 판세를 관망하던 일본의 서쪽 다이묘(大名)들은 신정부 편으로 일제히 돌아섰다.
비록 서쪽을 내줬지만 난공불락의 에도성을 근거로 한 일본 동쪽 다이묘들은 막부의 든든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요시노부는 아직 막대한 전력을 보유했음에도 신정부군에 항복해 버린다. 막부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일본의 근대화 주도권은 제국주의자들에게 넘어간다.
요시노부의 다소 어이없는 항복 이유에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권력의지가 약했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요시노부는 항복 후 그저 귀족신분으로 조용한 삶을 살다 천수를 누렸다. 요시노부가 권력의지를 가졌다면, 반막부군을 물리쳤을 수도 있고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지 모른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중징계가 3일 확정됐다. 피해도 크고, 판매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도 심각해 중징계는 피할 수 없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은행들은 책임은 인정하지만, CEO의 신분에 제약을 가할 정도의 징계는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DLF 사태 책임이 CEO로서 자격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잘못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CEO들 양심에 따른 판단이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조용병 신한지주 회장은 자신의 채용비리 혐의에 대한 무죄 소신이 확실했다.
당장 연임도전 여부를 결정해야 할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다. 제재를 수용해 불명예 사퇴하거나, 제재에 대한 법적 판단을 구해 명예회복을 도모하는 길이다.
금융권에서는 피감기관이 당국의 판단에 소송을 걸 경우 앙심을 살 우려를 하기도 한다. 현행 감독규정 상 금감원장의 개인 제제에 대한 판단기준이 다소 포괄적이어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소송 승소율은 70% 남짓이었다. 법적 검증이 자유로워야 ‘무소불위(無所不爲)’가 예방된다.
만약 손 회장이 연임을 포기한다면 차기 우리금융 회장은 외부인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손 회장이 매년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데다, DLF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은 임원들이 다수다. 회장과 행장을 분리한 만큼 당장 행장이야 뽑는다고 해도 회장 후보는 마땅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우리은행과 우리금융 CEO 절반이상이 외부출신이었다. 민영화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데다, 당국 조치로 CEO가 물러난 상황이라면 권력측근이나 관료출신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노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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