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어려우니 부동산에 더 집중
내년 예상밖 경기개선 가능성 ↑
집값 규제 보단 생산금융 유도를
조선시대에는 신분을 10등급으로 나눠 가옥이 규모는 물론 세부치장까지 허용범위를 제한하는 가사제한(家舍制限)이 있었다. 수도 이전으로 탄생한 신도시 한양에 기득권자들이 무분별하게 집을 짓지 못하려는 의도였다. 이 같은 규제는 고려 이전, 삼국시대에서도 발견된다. 가진 자들의 과시욕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부동산이나 사치품 보다는, 가급적이면 공공과 사회가 함께 수혜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부자들의 관심을 돌리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주택시가총액은 4709조원이다. 전년대비 8.43% 늘었다. 올해는 집값이 상반기엔 내리다 하반기 들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신규 공급된 주택도 있을 테니, 올 연말이면 5000조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조 달러 가량인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다. 약 1700조원 가량인 국내 주식시장의 3배다.
보통 부동산시장은 증시와 동행했다. 경기가 개선되고 소득이 높아지면 더 좋은 집을 사고 싶고, 위험자산 투자에도 과감해지는 게 정상이다. 부동산 열풍이 불었던 참여정부 때는 중국 발(發) 호황이 바탕이 됐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증가율이 건설투자를 앞질렀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2000에 도달했고, 서울 뿐 아니라 지방 부동산 가격까지 들썩였다.
지금은 미중 무역분쟁 등의 여파로 경기도 부진하고, 소득도 정체다. 최근 민간소비는 미약하고 설비투자도 미지근하다. 2017년까지 뜨거웠던 건설투자도 지난해부터 급랭하는 조짐이다. 코스피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박스피’에 갇혀있다. 집값이 오르지만 서울과 수도권, 일부 대도시에서만 국한되고 있다. 불황 속에서 좀 가진 자들은 모두 부동산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강남 재건축 잡겠다고 출발한 김수현(전 청와대 정책실장)-김현미(국토교통부 장관) 콤비의 부동산 대책들은 결국 서울 집값만 자극하고 있다. 요즘 서울에선 강남 뿐 아니라 이른바 마·용·성에서도 ‘자고 나면 1억’, ‘(분양)당첨만 되면 따블’이 보통이다. 정부가 ‘똘똘한 한 채’를 외치자, 돈 좀 있다는 이들은 ‘식구 당 한 채’로, 외지인들은 ‘서울에 한 채’로 화답하는 모양새다.
불안할 때는 지표물이 정답이다. 부동산 가운데서도 지표인 서울로 집중하는 게 당연하다. 이젠 대출규제도 한계에 다다른 듯 하다. 특히 돈 많은 부자들에게는 효과가 적을 수 밖에 없다. 이들은 현금이 많든지, 대출한도가 넉넉하다. 집값이 오르면 대출한도도 함께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우리만의 독특한 전세 제도도 대출규제의 위력을 떨어뜨린다.
뭔가를 금지하는 대책으로는 서울 집값을 잡기 어렵다. 강남 집값이 꼭 잡아야 할 대상인지도불분명하다. 전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도 이른바 부자들만의 리그인 지역은 존재한다. 정부는 또 뭔가 대책을 내놓을 태세인데,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에 앞서 부작용을 먼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왜 서울 등 일부 부동산이 이렇게 난리인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국은 거시경제다. 부동산, 그것도 서울 주택이 아닌 곳으로 돈을 흘러가야 지금의 ‘미친 서울 집값’이 진정될 수 있다. 내년 경제가 다들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커보인다. 올해 기저효과가 있는데다, 전세계적인 기준금리 인하 행진도 멈출 전망이다. 우리 경제 주력 엔진인 반도체 경기도 살아난다는 예상이 이어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하는 법이다. 부동산을 규제하기 보다는 부동산이 아닌, 생산적인 곳의 규제를 과감히 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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