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위험관리 역할 간과
DLF사태원인 ‘본질’ 이해부족
자산관리시장 ‘근본’ 혁신필요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허점을 보여 상대를 이(利)로서 유인하고, 뒤늦게 칼을 뽑지만 먼저 적의 급소를 친다(示虛 開利 後發先至)”
장자(莊子) 설검(說劍) 편에 나오는 천하무적 검법의 요결이다. 장자는 이 검법을 익히면 열걸음 마다 한사람씩 베어 천리를 가도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열자(列子)는 은(殷)나라 천자가 지녔다는 전설의 보검(寶劍) 세 자루를 소개한다. 휘둘러도 소리가 없고 베여도 아무 느낌 없는 함광(含光), 휘두르는 소리는 나지만 베일 때 고통이 없는 승영(承影), 베이면 통증은 있지만 피는 흐르지 않는 소련(宵練)이다.
제자백가(諸子百家)에서 검과 검법은 정치의 은유로 흔히 사용된다. 오늘날 규제와 통한다. 정치와 규제는 사람을 살리는 수단이 되어야지, 애꿎은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사모(私募)의 탈을 쓴 사실상의 공모펀드, 즉 사이비(似而非) 사모펀드를 단속하고, ‘고난도’ 금융상품이란 범주를 만들어 은행과 보험사의 사모 판매를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사이비’ 규제는 늦었지만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고난도’의 정의다. 금융위원회는 ‘파생상품이 내재돼 있거나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경우로 정했다.
DLF 사태를 요약하면 잘못 설계된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한 결과다. 파생기법이 담겨 있어서, 또는 원금손실 위험이 30%가 넘었던 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파생기법은 현대금융에 있어 필수불가결이다. 투기적(speculatve) 접근은 경계해야 하지만, 위험관리(hedge)를 위해서는 필요한 도구다.
위험상품은 증권사 등에서만 가입하란 뜻인데, 같은 논리면 원금보장형 사모상품의 증권사 판매도 금지해야 할까? 왜 손실기준을 20~30%인지도 뚜렷치 않다.
투기와 헤지에 대한 판단 없이 파생이라고 무조건 사모판매를 금지한다는 것은 밭을 훼손한 소를 빼앗는 혜전탈우(蹊田奪牛)의 행위다. 소 주인의 관리소홀을 단속해야지, 아예 소를 키우지 말라는 것은 농사 자체를 망치게 하는 가혹한 조치다.
소비자에게만 불리하게 설계된 금융상품을 사전에 걸러내고, 판매과정에서 무리나 불법 가능성을 차단하고, 기초자산 상황변화에 따른 적절한 조언을 해주도록 하는 게 핵심이어야 했다.
금융위는 은행은 원금보장에 대한 국민신뢰가 높아 이해가 어려운 고위험상품 판매는 일정부분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은행=원금보장’이란 잘못된 인식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예금의 원금보장은 엄격히 말해 예금자보험 보장 한도 이내다. 은행 부실화 때 정부가 구제금융(bail-out)을 제공하지만, 예수금에 대한 100% 보장 개념은 아니다. 은행 예금의 원금손실 가능성이 낮은 것도 부도위험이 가장 적은 국고채 등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중남미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 발행 채권도 부도가 날 수 있다. 국고채는 초저위험 증권이지 원금보장 증권은 아니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즉 헤지펀드 최소투자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높인 것도 모순이다. 돈이 많으면 위험감수 능력도 높다는 논리다. 돈이 많다고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돈으로 능력을 따지자면 문제가 된 DLF에 3억원 이상 투자한 이들의 민원은 거절해야 한다.
시장은 늘 규제의 헛점을 파고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규제 당국은 ‘검술’의 고수여야 한다. 사태가 벌어진 후 대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게 숙명이다. 예방하겠다고 먼저 칼을 뽑아 마구 휘두르면 애꿎은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늦게 칼을 뽑지만 정확히 급소만 타격해야 한다.
과연 바람직한 규제의 비법, 함광과, 승영, 소련의 검술은 무엇일까?
승영은 금융투자교육이다. 이번 대책에는 금융소비자들의 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장기적인 방안은 커녕 선언조차 담기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시작해야 할 일이다.
함광은 자산관리자문시장의 양성화다. 금융상품을 판매해야만 수익이 발생하는 현행의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상품판매 자체가 아니라 금융사의 자문수준에 따라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소비자와 금융사가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의 기반이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방법이다.
소련은 금융관련 법령의 재정비다. 은행, 보험, 자본시장 등 권역별로 나뉘어진 법체계에서 각 업권별 운신의 폭이 적다. 증권사 뿐 아니라 은행도 투자은행(IB)이 될 길을 열어주는 게 바람직하다. 자산관리서비스는 범위를 제한해서는 효율을 얻기 어렵다. 은행도 고난도 상품을 잘 다룰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게 근원적이 대책이다. 물론 기득권 재조정에 따른 고통이 있겠지만, 특정 업권의 ‘피’를 전제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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