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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백마는 말이 아니다…속으로 흉봐도 죄

백마를 타고 관문을 지나려는 선비가 있었다. 문지기가 말의 몫의 통행료도 요구했다.

선비가 발끈한다. “백마는 말이 아니요(白馬非馬)”

기원전 4세기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사상가 공손룡(公孫龍)의 유명한 궤변이다. 말은 실체요, 희다(白)는 속성이니 백마와 말이 같을 수는 없다는 논리다.

문지기가 당시 서민에 유행하던 실체를 중시하던 묵가(墨家) 공부를 했을까.

문지기의 반박이다. “백마가 말이 아니면 양이란 말이요?”

삼성이 구입해 정유라가 탄 말이 뇌물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정유라를 위해 산 말이고, 사용은 물론 처분권까지 있으니 뇌물이란 논리다. 파기환송심에선 ‘경제적 이익’의 범위를 두고 삼성과 특별검사간 공방 벌어질 지 모르겠다.

사용으로 인한 이익과 처분이익은 다를 수 있다. 사용권만 누리던 정유라가 “말을 팔라”고 처분권까지 행사했을 경우 매각대금이 어디로 갔을 지다. 뇌물 가액의 문제가 된다.

공손룡으로 돌아가자. 문지기는 기어코 돈을 받아냈다. 이번 사태에 대입해보자.

“말은 뇌물이 아니요”

“뇌물이 아닌데 왜 공짜로 탔소”

“말을 탔다고 소유는 아니오”

“맘대로 할 수 있었으니 주인이요”

대법원이 삼성의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경영승계가 그룹의 현안이니 그에 대한 도움을 바라고 뭔가 해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기업 총수 일가에 재산 대물림은 언제나 현안인 게 맞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상속·증여 시 세금을 아끼려는 마음은 자산가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한무제(漢武帝) 때 대농령(大農令)을 지낸 안이(顔異)는 경제정책에서 황제와 충돌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신하가 무제의 정책을 옹호하자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나타냈다. 무제는 그에게 ‘마음 속으로 황제를 욕한 죄’, 즉 복비죄(腹誹罪)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 군주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때다. 당시엔 법도 그랬다. 안이는 황제 앞에서 너무 안이(安易)했던 셈이다.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면 그 대가가 중요하다. 구체적 증거가 중요해졌다. 정유라가 한창 말을 탄 후에 상장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핵심이 될 듯하다. 마침 소송 중이다. 회계기준 변경과 상장과정에서 이른바 경영승계를 위한 불법이 있었는지, 당시 당국 등이 이를 개입했는지에 대한 법정 다툼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첨예한 사안이고, 금융당국도 오랜 기간 고심 끝에 문제를 인정했다. 법원의 판단이 어떨지는 예측이 어렵다.

하지만 임직원과 주주 등 집단으로서의 ‘삼성’은 어느 쪽이든 결국 피해를 입는 구조다. 불법이 없었다면 누명을 쓴 꼴이고, 대주주나 경영진의 불법이 있었다면 배신을 당한 셈이 된다. 기업들의 행위에 대한 신중함이 더 요구된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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