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 “일본말 쓸 때 나도 모르게 조용하게 돼” 하소연
지난 25일 방문한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재팬타운 골목. 최근 거세진 반일감정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커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줄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일본 불매운동 뉴스 보고난 뒤 눈치보여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재팬타운의 카페에서 만난 스즈키(34)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산지 2년정도 되었다는 그는 최근 들어 “괜찮느냐”는 일본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한국어 공부 동영상을 보고 있던 그는 “요즘엔 거리에서 일본말을 쓰는 것도 괜히 움츠러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한국의 반일감정이 거세지자 서울의 작은 일본 재팬타운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긴 이곳은 현재 1000여명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반일감정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정부 간의 일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대답을 피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입 모았다.
이날 방문한 재팬타운의 먹자골목은 작은 일본을 방불케 했다. 초밥, 술집, 식료품 점 등 일본 가게가 가득했다. 그러나 곳곳에 붙은 형형색색 일본어 간판이 초라해 보일 만큼 인적은 드물었다. 최근 반일 감정이 악화되면서 이 동네에 사는 일본인들이 밖에 나오기 꺼려하는데다 일본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일본식 주점에서 만난 한국인 알바생은 “자주 오는 일본인 손님들이 나타나지 않은지 3주정도 됐다”며 “아무래도 반일 감정이 심해지다 보니 되도록 외출을 삼가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손님이 줄다 보니 점주들은 울상이었다. 일본 선술집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있던 점주 30대 김모 씨는 “이곳은 손님의 95%가 한국인인데 요즘 손님이 매우 줄었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최근에 일본 물품 불매운동이 번지면서 술집에 들어와 “한국 술이 없느냐”고 호통을 치는 손님들도 생겼다고 했다. 그는 “원산지가 일본인 것이 어디에도 없는데도 재료가 일본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며 “장사하는 3년동안 이렇게 반일 감정이 장사에 영향을 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팬타운에서 만난 30대 여성이 기자에게 ‘양국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
일본인들은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평소보다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놨다.
일본인 A 씨는 “한국인 여자친구를 만날 때 일본어를 쓰는데 서로 작은 목소리로 말하게 됐다”며 “크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인 B 씨는 “최근 휴대폰 언어를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꿨다”며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내 휴대폰을 볼 때 언어가 일본어면 괜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며 씁쓸히 웃었다.
두 국가가 하루빨리 과거를 청산하고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곳에서 10년간 일본 라면집을 운영하고 있는 나가사카 히로히코(57) 씨는 “한일 관계는 명백히 정부 간의 문제다. 외교 당국자들이 원만히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30대 B 씨는 서툰 한국말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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