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 이유 ‘비상금’ ‘군것질 소확행’ 순
‘無현금 사회’ 도래? 전문가 의견 갈려
좋아하는 핫도그를 사 먹기 위해 언제나 현금을 들고 다닌다는 직장인 김승민(29) 씨의 지갑. 박자연 인턴기자/nature68@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박자연 인턴기자] 충북 청주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는 조모(27) 씨가 지난 12일 출근할 때 지참한 현금은 1만원짜리 두 장 뿐이었다. 조 씨는 “옷가게나 작은 소품가게도 계좌이체가 가능하니 현금을 쓸 일이 없다”며 “두 달 전 5만원을 (현금지급기에서)뽑았는데 다 못 쓰고 있다”고 했다. 굳이 현금을 갖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그는 “가끔 ‘인생 네컷(셀프 사진관)’에 가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때 현금이 없으면 정말 곤란하다”면서 “그거 찍을 수 있을 만큼은 꼭 갖고 다닌다”며 웃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까. 2017년 한국은행은 ‘동전 없는 사회’ 시범 사업을 시작하며,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첫 발을 내디뎠다. 실제로 현금 없는 사회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금 사용량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가 주머니나 지갑에 소지하고 있는 현금은 평균 7만8000원이었다. 3년 전보다 33%나 감소했다. 특히 20대는 현금 보유액이 평균 5만4000원으로 가장 적었다.
20대 1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지갑 속 현금 액수. [헤럴드경제 설문조사] |
▶20대 10명 중 6명은 현금 소지=하지만 각종 페이나 카드로 결제하며 현금 보유·사용액이 가장 적다는 20대조차 “여전히 현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13일 헤럴드경제가 20대들의 ‘지갑 사정’을 살펴본 결과 이들은 조 씨처럼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실현하거나 비상시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대들의 지갑 속 모습은 다양했다. 현금이 하나도 없이 카드만 수두룩한 지갑, 5만원권 다섯 장이 빽빽하게 꽂힌 지갑까지 각양각색이었다.
현금을 한 푼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20대는 절반에 못 미치는 39명(39%)이었다. 현금을 소지하고 있는 응답자 61명의 지갑 속 현금은 ▷0~1만원(28명·46%) ▷1만~3만원(14명·23%) ▷3만~5만원(12명·20%) ▷5만원 이상(7명·11%)의 순이었다.
20대 1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소지 현금의 사용처. [헤럴드경제 설문조사] |
▶“현금 갖고 다니는 이유, 비상금·소확행…”=이들에게 현금을 들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비상용, 혹시 몰라서’라는 응답이 13명(21%)으로 가장 많았다. 직장인 문모(26) 씨는 “지난달 팀장님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빈소로)갔는데, 현금이 하나도 없어 애를 먹었다”며 “한밤중이라 은행도 다 닫고 ATM(현금자동입출금기)도 꺼진 것을 보고 ‘현금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다녀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상금’ 다음으로 20대의 현금 소지 목적은 ‘길거리 음식을 통한 소확행’이었다. 소확행을 위한 군것질 거리는 핫도그, 호떡 등 다양했다. 대부분 주전부리용 음식은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 현금이 필요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취업 준비생은 “평소 타코야키를 좋아하는데, 이를 파는 푸드 트럭과 갑자기 마주칠 수 있어 현금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지성(28) 씨도 “길을 걷다 호떡 가게를 발견했는데 현금이 없어 못 먹으면 서럽다”고 했다.
취미를 위한 현금이 그 다음을 차지했다. 특히 신종 취미인 코인 노래방을 가기 위해 현금을 갖고 다닌다고는 사람이 9명이나 됐다. 직장인 김모(28) 씨는 “코인 노래방은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라며 “코인 노래방을 위해 현금 1만원을 뽑아 일주일 동안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녹음해 매일 목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취미”라고 말했다.
현금 소지의 이유로 로또(6명)도 빠지지 않았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27) 씨는 “평상시에는 카드만 쓰지만 2주에 한 번 1만원을 ATM 등에서 찾는다”며 “1등 당첨 경력이 있는 로또가게에 가서 자동 추첨으로 두 장씩 산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 현금 할인, 주차비, 종교 활동, 인형 뽑기, 구두 닦기 등을 위해 20대들은 현금을 갖고 다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20대는 “자주 가는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 현금 할인 행사’를 한다”며 “그 금액만큼은 늘 현금으로 갖고 다닌다”고 했다.
여전히 현금을 갖고 다니는 20대의 모습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현금 없는 사회가 ‘올 수 없다’와 ‘올 수 있다’로 나뉜 것이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ICT(정보통신기술)가 발전해서 현금 없는 사회가 가까워지고는 있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거래비용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며 “노점 같은 곳까지 완전하게 캐시리스(cashless)로 바뀌기 어렵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반면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인데도 20대가 소확행을 추구하는 공간 대부분이 현금만 사용 가능하다면 그것은 우리나라가 디지털 분야에서 미진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며 “굳이 현금을 뽑으러 가지 않아도 모든 공간에서 불편함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결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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