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등 경제 보복 사태에 모처럼 목소리를 합했다는 소식이 반갑다. 초당적 방일단을 구성해 의원외교 차원에서 사태를 풀어갈 방안을 찾는 한편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문 채택에도 합의한 것이다.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8일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동한 자리에서 의견을 모았다니 그 결과에 거는 기대도 크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마당에 당연히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일본의 보복 조치로 한국은 발등에 큰 불이 떨어졌고 온 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산업계는 독자적으로 생존 방안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다. 직격탄을 맞은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현지 사정을 살펴야 할 만큼 사정이 급박하다. 그것만 해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주요 그룹 관계자들과 잇달아 만나 대책을 숙의하는 등 모습도 연일 연출되고 있다. 급기야 사태 촉발 이후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적 대응과 외교적 해결을 병행하겠다는 요지의 대응 방안을 공개 천명했다.
그런데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없다. 오히려 일본은 대북제재까지 들먹이며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NHK는 이날 “한국이 수출관리에 개선이 없으면 규제는 더 강화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정치권은 물론 민도, 관도 따로가 될 수 없는 처지다. 당장은 급한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늦은 감이 있지만 정치권의 위기를 인식하고 역량을 한 곳에 집중키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왕 힘을 합하기로 했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둬 여야 협력의 좋은 전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초당적 방일단 등이 의미있는 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툭하면 친일 프레를 씌워 편가르기를 하는 등의 적전분열적 행태부터 사라져야 한다. 어줍잖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얄팍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초당적 대처가 가능하다.
한일간의 문제는 사실 일조일석에 해결이 어렵다. 정치권이 힘을 모으겠다는 것은 가상하나 이 역시 본질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부단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두 나라가 접점을 찾아 서로가 파탄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양국간 성의있는 협의’를 제안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정치권이 정말 해야 할 일은 외교 협상팀에 힘을 실어주고,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