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앞으로 이직자의 영업비밀 침해 인정 범위가 넒어지고, 민사상 배상 책임도 가중돼 관련 법적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개정된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이 이날부터 시행된다. 새 특허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특허권 또는 영업비밀을 고의로 침해했을 때 실제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영업비밀을 충족하는 요건도 완화됐다. 새 부정경쟁방지법은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이 유지되도록’한 조치가 있을 경우로 구분하던 영업비밀 인정요건을 ‘비밀로 관리’할 경우로 완화했다. 아울러 퇴사자가 전직장의 영업비밀을 보유하고 있어 삭제 또는 반환요구에 불응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법률이 강화됐다.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징역 및 벌금 규모도 대폭 상향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민인기 변호사는 "이직자가 전직 이메일 내용을 참조해 새 기술개발을 시도하거나, 전직장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를 참조해 새 개발을 하는 경우의 소극적 비밀도 이제는 영업비밀로 규정돼 처벌받거나 배상할 수 있다" 며 "이직과정에서의 법적 분쟁 가능성은 훨씬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새 법률이 적용되면 전 직장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를 참조해 새 개발을 하는 경우의 소극적 비밀침해 행위도 이제는 영업비밀로 인정돼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민 변호사는 “이직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기술유출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많은데, 처벌받지 않았던 사례도 처벌될 수 있는 소지가 생겨 기업 차원에서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변호사업계는 중소기업을 비롯한 4차산업 시장의 법률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로펌 중 최초로 판교 사무소를 개소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주기적으로 법률에 관한 세미나 및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식재산권(IP) 그룹과 영업비밀보호 그룹을 운영하며 관련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허 전문가인 장덕순(14기) 변호사가 핵심멤버로 있다. 법무법인 광장 IP그룹도 중소기업 기술·아이디어 탈취 근절 조치 시행에 따라 기술유출분쟁 대응팀을 신설했다. 율촌은 기술유출 법률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신사업 지식재산권(IP)팀을 신설했다. 기술탈취, 거액의 직무 발명 보상금채무 등과 같은 리스크 관리 업무에 집중한다. 미래산업팀을 신설한 법무법인 지평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 중소기업벤처부의 규제 자유특구 등과 관련한 자문을 수행했다. 법무법인 화우 지식재산그룹도 기술유출 및 특허분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기술이 고도화됨에 기술유출을 둘러싼 기업간 법률분쟁도 심화되고 있다. 당장 화학업계의 신성장 분야인 이차전지와 관련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의혹을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및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빼내간 기수로 배터리를 만들었다며 수입금지 및 영업비밀침해 금지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물류·장비 등을 납품해온 협력사인 톱텍은 지난해 4월 삼성의 스마트폰 시리즈에 사용되는 엣지패널의 핵심기술을 중국기업에 유출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