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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제모는 또다른 코르셋”
“털 없는 여성 성적 교환 가치 높다고 여겨져”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제모 열풍
“소비사회 들어서면서 제모 강요하기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모 용품들[사진=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성기윤 기자]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면서 제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체 노출이 많은 옷을 입으면 자연스레 ‘털’을 정리하는 게 관행이 되는 분위기도 있다. 직장인 남성 유모(31)씨는 “출근할 때 가끔 반바지를 입는다. 다리 털이 많은 편이어서 제모를 좀 해야하나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모를 사회적인 억압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특히 여성의 제모는 여성을 억압하는 '코르셋'이라며 여성의 제모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의 제모는 과거부터 남성에 의해 강요됐다는 지적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제모한 상태가 어린 상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린아이 같은 몸을 유지하는 게 남성이 봤을 때는 순결해 보이고 성적 교환 가치가 높다고 여겨졌다”고 주장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18세기 과학이 발전하면서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털이 나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여성은 털이 없어야하는 존재라는 규범이 됐고 그게 이후로도 성 차이를 더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이 제모한 신체는 일종의 '어린 상태'를 연상시키게 한다. 어린아이 같은 몸을 유지하는 것이 남성이 봤을 때 순결해 보이고 성적으로 교환성이 높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제모의 이유를 털이 제거된 몸을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털이 있는 것은 동물 또는 짐승에 가까운 상태로 간주되고 따라서 동물과는 구분돼야 하는 사람에게는 털이 많지 않은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왔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교수는 "우리는 사회적이고 공식적인 몸이 될 것을 요구 당한다. '털을 관리하는 몸'이 '사회적인 몸'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내면화됐다"고 설명했다.

이현재 교수는 "과거 그리스 로마에도 제모 문화가 있었다"면서 "당시 미술작품에도 털이 없다. 털이 없는 육체가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제모를 하는 외모가 매력적인 기호상품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요즘 트렌드는 '섹시'인데 섹시의 핵심은 아름다움을 가질 정도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어려보이는 것도 하나의 매력적인 섹시함이 된다. 제모는 털을 관리할 정도의 능력이 된다는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려보일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세기 소비산업이 발전과 함께 제모 용품들이 등장하면서 제모를 더 부추겼다고 본다. 이 교수는 "초기 한 면도기 회사 광고를 보면 겨드랑이털이 있는 여성은 여성답지 않다는 프레임을 주입시키면서 면도기를 팔았다. 남성도 왁싱산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제모가 많아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 사회학 전문가는 제모는 근대의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가 위생이었다. 털이 있으면 비위생적·전근대적이고, 털이 없으면 위생적·근대적이란 인식 구도다"라며 "한국에선 남성들이 면도를 하고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 제모에 나선 것도 근대 기획이 사회적으로 숨가쁘게 가동되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들에게 반바지를 입으려면 다리털을 깎으라, 여자들에게 민소매를 입으려면 겨드랑이 털을 밀으라는 사회적 강요 역시 근대 기획의 산물"이라며 "제모는 매우 사적인 결정이지만, 사실은 매우 사회적 결정이다. 탈근대(포스트모던)가 지난지 오래지만 여전히 2019년 대한민국 우리 몸 위에선 '전근대와 근대'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kysu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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