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위반 가릴 전문가 패널 소집
유럽연합(EU)이 우리나라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를 가릴 전문가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함에 따라 협약 비준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협약 비준이 무산될 경우 EU측으로부터 수출입 물량 제한을 포함한 다양한 비관세 무역제재의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U와의 무역에서 국내 기업이 실질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일 우리 정부에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 따라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했다. 한-EU FTA 상 노동 조항, 즉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은 1991년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 협약과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제105호 협약 등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EU는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다가 작년 12월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의 분쟁 해결 절차 첫 단계인 정부간 협의를 요청했다. 정부간 협의는 지난 3월 성과 없이 끝났다. 전문가 패널 소집은 분쟁 해결 절차의 마지막 단계로, 전문가 후보자 명부(한국6명, EU 6명, 제3국 6명) 중 3명으로 패널을 구성해 한국의 한-EU FTA 위반 여부를 따지게 된다. 전문가 패널은 한국과 EU 어느 한쪽이 소집을 공식 요청한 날부터 2개월 안으로구성되며 90일 동안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자문단 등의 의견 청취를 거쳐 권고 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한국과 EU 양측에 제출한다.
전문가 패널이 한국의 한-EU FTA 위반 결론을 내릴 경우 직접적인 무역제재 조항은 없지만 다양한 비관세 제재에서 자유로울수 없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 상황에 대해 (EU 측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EU측이 아주 오랫동안 굉장히 많고 종류도 다양한 비관세 제재를 사용해왔다”며 “EU가 한국의 ILO 미비준을 이유로 한국을 상대로 비관세 무역제재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역상 불이익 외에도 한국은 FTA 역사상 최초로 노동 조항을 위반한 노동권 후진국의 오명을 쓰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 국정과제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내걸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진행했으나 노사 양측의 입장 차이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부는 9월 열릴 정기국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계획이지만,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