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경기 하강 속 내부 위기경영 고삐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유난히도 바쁜 한 달 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부쩍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국내 재계 1위 기업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넘어 글로벌 유명인사와 국내 재계 인사들의 회동을 연이어 주도하는 등 재계의 대표주자로서 ‘세일즈 외교’에 적잖은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사우디아라비아 모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부총리와 국내 5대 그룹 총수의 회동을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에서 진행하며 재계 1위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데 이어 29일에는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또 이달 4일에는 소프트뱅크 수장 손정의 회장과 만찬을 가졌다.
이날 만찬자리에 손 회장과 이 부회장은 함께 차를 타고 도착해 나란히 입장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날 만찬 간담회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이 참석했다.
빈살만 왕세자에 이어 손 회장과의 만남이 성사된 데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특히 두 인사와의 만남은 최근의 경영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감안할 때 의미가 남달랐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구도에 따라 교역 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탈 석유’를 추진중인 중동의 실세와 경제인들의 만남을 주도한 점은 재계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안겼다. 또 일본의 경제 보복이 구체화되는 시점에 굴지의 일본 기업인과의 회동을 마련한 자체가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세일즈 외교에 전력하는 동시에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일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경영진과 주말 긴급회동을 시작으로 2주 만에 2차 간담회를 가지며 사실상의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스마트폰을 맡고 있는 IM사업부 경영진과도 만나 현안 및 미래 투자 현황을 점검했고, 지난달 17일에는 삼성전기를, 24일에는 삼성물산을 방문했다.
국정농단 관련 대법원 판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수사 등 ‘내우’에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반도체 업황 악화 ‘외환’까지 겹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위기경영’ 고삐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의 간판 그룹의 총수로서 이 부회장이 적잖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그룹 총수로서의 기동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대규모 투자와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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