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후 동물학대 논란으로 존폐 가림길
-지난해 199억원 투입하는 정비사업 계획 발표로 폐업 급물살
1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내 가축시장(개시장)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개들을 구조하고 있다. 구포 가축시장은 상인들과 북구 협약에 따라 이날부터 개 도축 및 전시를 금지해 사실상 폐업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가축시장에 남아 있던 개 85마리를 구조해 해외 입양을 추진한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 동물 학대 논란을 일으키며 60년 넘게 영업을 이어온 부산 구포 가축시장(개 시장)이 마침내 문을 닫았다.
구포 가축시장은 6·25 전쟁 이후 당시 부산 최대 전통 시장이던 부산 구포시장에 처음 생겨났다. 1970∼1980년대는 점포가 60∼70곳에 육박하는 등 전국 최대 규모의 개 시장으로 손꼽히며 호황을 누렸다. 동물복지와 개 식용에 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던 당시만 해도 구포 가축시장은 구포시장 큰 축을 담당했다.
개들은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온종일 가게 앞 철장 안에 갇혀 진열품 신세로 있다가 업소 안 도축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만 해도 개 시장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가축시장 내 철장과 도축장은 동물 학대의 상징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부터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시민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복날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개 시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일부 시민은 개 시장을 구시대 산물이라며 손가락질했다.
도심 한복판 개 시장은 개 식용 찬반 논쟁의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 잡았다. 이후 서울 경동시장, 성남 모란시장 안 개 시장이 먼저 문을 닫았고 구포 가축시장도 존폐 갈림길에 섰다.
이때부터 폐업 논의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실제 폐업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2017년 말 구포 개 시장 전체 19개 상점 중 15개가 영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면 전업이나 폐업에 동의한다는 '업종 전환에 대한 조건부 동의서'를 제출하면서 폐업으로 가는 첫발을 떼기 시작했다.
이후 폐업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지난해에는 199억원을 투입하는 구포가축시장 정비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부산 북구는 동물 보호팀을 신설해 구포 가축시장 상인 업종 전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마침내 모든 점포가 업종 전환에 동의했다. 구포 가축시장 환경정비 및 폐업 상인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돼 업종전환하는 상인들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1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시장 내 가축시장(개시장)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개들을 구조하고 있다. 구포 가축시장은 상인들과 북구 협약에 따라 이날부터 개 도축 및 전시를 금지해 사실상 폐업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가축시장에 남아 있던 개 85마리를 구조해 해외 입양을 추진한다. 연합뉴스 |
구포가축시장은 서울 경동시장과 성남 모란시장과 달리 합의에 따른 폐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경동시장과 모란시장은 폐쇄 과정에서 강제철거 등 행정력이 동원됐고 폐쇄 이후에도 고기 판매가 계속됐다. 구포 가축시장은 이와는 달리 남은 19곳 업소 모두 업종 전환에 동의했고 물리적 충돌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개 85마리도 모두 동물보호단체에 인계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대화로 폐업을 끌어냈다는 점 등에서 구포 가축시장 폐업은 완결성을 갖춘 모델"이라며 "대구 칠성시장 등 다른 지역에서도 구포 가축시장 폐업 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평가했다.
구포가축시장 상인들도 마지막까지 일부 반발이 없지는 않았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었다. 박용순 구포가축시장 지회장은 "60년 넘게 이어온 생업을 포기하는 게 무섭고 두렵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60년 넘게 개들이 울부짖던 자리는 주차장과 반려동물 1천만시대에 걸맞게 동물을 위한 친화 공간을 설치할 예정이다.
구포 가축시장 전체부지 3천724㎡ 중 2천381㎡에는 주차장이 증축된다. 주차장 부설상가에는 업종을 전환한 19개 업소 상인이 입주할 예정이다. 나머지 공공용지 3곳(1천672㎡)은 주민 문화광장, 반려견 놀이터, 반려동물복지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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