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차원에서 총력 대응했지만.."아쉬운 결과"
-필리핀, 수리온보다 비싼 블랙호크 선정 미스터리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유럽산 헬기를 기반으로 국산화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이 무산됐다. 필리핀은 미국산 헬기 블랙호크를 선택했다.
한국은 국방부 장관 지휘 헬기를 미국산 블랙호크에서 수리온으로 교체 검토하는 등 수리온 판촉에 공을 들였으나 끝내 분루를 삼키게 됐다.
5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필리핀은 지난주 미국산 블랙호크 수입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아쉬운 결과"라는 한탄이 흘러 나온다.
필리핀 정부의 이 같은 의향은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방사청으로 전달됐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서울 용산 국방부 연병장에서 수리온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필리핀은 한국항공우주(KAI)의 수리온, 미국 시코스키사의 블랙호크(UH-60) 등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최종 고심 끝에 블랙호크를 선정했다.
이번 수주전이 미국산 블랙호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1979년 처음 실전 배치됐고 2006년 현재의 신형이 나온 블랙호크보다 2013년 첫 실전배치된 수리온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
우리 정부 역시 수리온의 필리핀 수출이 성사될 경우, 수리온의 해외 수출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필리핀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다.
▶불과 6개월전 두테르테 '수리온'에 높은 관심=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수리온 실물을 반드시 보고 돌아가겠다고 할 정도로 수리온을 알고 싶어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원래 수리온을 제작하는 KAI가 있는 경남 사천을 방문하고자 했지만 일정상 가지 못하게 되자 방한 중 수리온 실물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정부와 KAI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6월 5일 경기도 포천에서 운용 중인 수리온 한 대를 서울 용산 국방부 연병장으로 옮겼다.
국방부 연병장에는 수리온 외에 국산 소총, 기관총, 함대함 미사일 해성, 청상어 어뢰, 한국형 GPS 정밀유도폭탄(KGGB) 등이 전시됐다. 오직 두테르테만을 위한 무기 전시장이 차려진 것이다.
2003년 완공된 국방부 연병장에 실전에 투입된 전투용 헬기가 착륙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두테르테는 이날 다른 일정을 축소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반 가량 일찍 국방부 연병장을 찾아 수리온을 둘러본 뒤 시동도 직접 거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국방부 장관을 대신해 서주석 차관이 외부 일정 중 긴급히 청사로 돌아와 두테르테를 맞았고, 전제국 방위사업청장도 동석했다.
이날 방문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듯 했다.
이틀 후인 6월 7일 두테르테가 자국 델핀 로렌자나 국방장관에게 수리온 구매 검토와 함께 한국산 경공격기 FA-50 추가 구매를 지시한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이날 에르모게네스 에스페론 필리핀 국가안보보좌관은 필리핀 공군이 수리온의 생존 능력을 검토하는 기술실무그룹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애초 2017년 말 캐나다의 ‘벨 412’ 헬기 16대를 2억3300만달러(약 2500억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캐나다가 필리핀의 인권 실태를 문제 삼자 두테르테가 이 헬기 구매계약을 전격 파기했다. 그 대안으로 수리온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필리핀 정부는 한국, 중국, 러시아, 터키 등의 헬기를 검토하면서 “벨은 6명이 탑승하지만 수리온에는 16명이 탑승한다”며 호평했다. 하지만 같은 예산으로 벨은 16대 구매가 가능한 반면 수리온은 10~12대를 구매해야 했다. 대당 250억원 가량인 수리온의 가격 경쟁력은 단점으로 지적됐다.
아울러 두테르테 방한 다음달인 7월 수리온 기반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 직후 필리핀의 헬기 구매사업은 답보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2배 비싼 블랙호크에 "더 저렴" 발언 미스터리=수개월여가 지나면서 미국산 블랙호크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국 국방장관과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의 지휘헬기가 미국산 블랙호크라는 점도 강하게 어필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블랙호크는 한국 수리온 대비 안정적 성능에 더해 파격적 가격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은 군 수뇌부 지휘헬기를 블랙호크에서 수리온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블랙호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블랙호크의 가격은 대당 500억원으로 수리온의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리핀에 낙점된 건 미스터리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필리핀 측에서 나온 묘한 발언이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14일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은 “블랙호크를 구매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옵션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로렌자나 장관은 “우리는 자금 부족으로 수리온 10대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블랙호크는) 16대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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