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남한이 압도적 경제력 우위에도 북한에 압도적 군사력 우세를 보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난 3월20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공개한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16년 추정치 기준 남한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9290억달러(약 2172조원), 북한 GDP는 400억달러(약 45조원)였다. 남한 경제력이 북한의 48배라는 얘기다. GDP 세계 랭킹은 남한이 14위, 북한이 115위로 100계단 이상 차이가 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취임 후 첫 ‘2017 국방부 국가보훈처 핵심정책 토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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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또한 남한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지난 2015년 남한 국방예산은 38조7995억원, 북한의 국방예산은 약 4조5000억원으로 남한 국방비가 약 10배 많았다. 그런데 우리 군은 북한의 군사력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5월4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2016 K-디펜스 조찬포럼에서 ’남한 군사력이 북한 군사력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다’며 그 이유에 대해 크게 3가지로 설명했다.
▶한민구 전 국방장관의 3가지 변명=한 전 장관은 첫째 북한군의 군사력 증강이 남한군보다 10년가량 앞섰다, 둘째 북한군의 실질 국방비는 알려진 것보다 10배 더 많다, 셋째 우리 군 국방비는 감소 추세에 있다 등 3가지 이유를 들었다.
한 전 장관은 먼저 북한은 1962년 4대 군사노선에 따라 군사력을 증강했지만, 남한은 1974년 율곡계획에 따라 군사력 증강에 나서 남한이 북한에 비해 10여년 가량 뒤쳐졌다고 설명했다. 둘째로, 2013년 기준 북한 국방비는 약 100억달러(약 11조원)로 남한의 30%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남북한 국방비에서 순수 전력증강비만 따질 경우, 북한이 우리의 40% 수준까지 이른다고 말했다. 한 전 장관은 북한의 경우 남한보다 인력이나 국가자원의 동원이 용이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무기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셋째로, 남한 국방비가 해마다 감소 추세라는 점도 지적했다. 1980년 정부 예산 총액 대비 국방비 비율은 34.7%였는데 지난해는 14.5%로 국방비 비율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GDP 대비 국방비도 1980년 5.7% 수준에서 지난해 2.5%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한민구 전 국방장관은 지난 5월 새롭게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군 수뇌부에게 “북한이 비대칭전력(핵무기 등 전쟁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전략무기)을 고도화하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하나 그 많은 돈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한 전 장관의 설명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 역시 이런 생각에 가깝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재임 당시 비슷한 의문을 가졌고, 군 수뇌부를 향해 남북한 군사력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군 당국의 남북한 군사력 비교 관련 정보가 미비해 재임 당시 남북한 군사력 비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후문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군 내부 전언에 따르면, 군은 여전히 남북한 군사력 비교 작업을 마무리짓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군 당국은 남북한 군사력 비교 프로젝트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로 꼽고 있다고 한다.
▶‘변명 말고 북한군 압도하는 강한 군 되라’는 문 대통령의 호소=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을 역임해 군의 이런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뭐했느냐’며 이번에 군을 강하게 질타한 것은 군의 수동적 자세를 능동적으로 전환하라는 강력한 촉구로 풀이된다. 군이 능동적으로 북한의 군사력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등 체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에서 남한이 북한에 향후 상당 기간 끌려갈 수밖에 없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또한 한국군 자체 방어능력이 보장될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어 한국군 내부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자주국방’의 꿈이 요원하다는 뜻도 은연중에 배어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형 3축체계를 언제까지 구축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을 세우라”고 직접 지시했다. ‘3K’로도 불리는 한국형 3축체계는 킬체인(Kill Chain:도발원점 선제타격체계), KAMD(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KMPR(대량응징보복체계) 등 3가지 개념이다.
킬체인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 징후를 보일 경우, 사전에 미사일 발사 원점을 미리 타격하는 개념이다. KAMD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경우, 공중에서 우리 군 자체역량으로 요격하는 개념이다. KMPR은 우리 측이 북한 미사일에 타격됐을 경우 훨씬 강한 보복공격을 가하는 개념이다. 즉, 북한 미사일 도발 전과 도발 중, 도발 후 우리 군의 대응전략이다. ‘북한에 맞서는 힘을 기르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남북의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남한이 북한의 45배에 달한다. 그러면 절대 총액상으로 우리 국방력은 북한은 압도해야 하는데 실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우리가 북한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해 오로지 (주한미군과의) 연합방위능력에 의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군 스스로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우리 군이 앞으로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북한군을 압도하는 강한 군대로 거듭나라는 대통령의 간절한 호소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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