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내년 말까지 실전배치하겠다는 계획은 현재로선 실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사드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데 지역이 반대할 수 있느냐며 한탄하고,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들은 한 곳도 빠짐없이 사드 결사반대 입장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상태다.
국가가 먼저라는 주장,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는 사드를 우리가 떠맡아야 하느냐는 지역의 항변이 맞부딪혀 평행선을 그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지난 1월부터 지금의 8월까지 계속되어 국가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국에 남남갈등 국론분열로 인해 남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과연 사드, 파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안훈 기자 rosedale@heraldcorp.com |
▶패트리엇, 그린파인레이더는 조용, 사드는 왜 시끌?=국내에는 이미 사드에 버금가는 전자파를 방출하는 군사무기들이 전국적으로 배치돼 있다.
수도권 남부에는 패트리엇 기지가 배치돼 있고 충청권에는 사드 레이더와 비슷한 출력의 탄도탄조기경보레이더(그린파인레이더)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인근 지역 주민들은 패트리엇이나 그린파인레이더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 해당 내용이 최상급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패트리엇 기지와 그린파인레이더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잘 모르고 있는 반면, 사드에 대해서는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또한 패트리엇과 그린파인레이더가 배치될 때는 왜 그렇게 조용했고, 이번 사드 배치를 앞두고서는 왜 전국이 들썩이는지 궁금해한다.
국정원 출신으로, 현재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사드 찬성론자로서 지역구가 경북 김천시여서 사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지난 22일 국방부가 성주군의 제3후보지 요청에 따라 제3후보지 검토를 착수한 다음날인 23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드는 특급 비밀이고 이런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면서 절대 보안을 지키며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발언은 다음날인 24일 김천에서 8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사드반대 집회에서 ‘독재’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날 집회 현장을 찾은 이 의원은 시민들의 야유 속에 “대한민국을 지키고 우리 김천도 확실히 지키겠다”며 “국방부는 주민 설득 이후 사드 배치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한쪽으로 기운 여론을 주민 설득을 통해 돌리기란 쉽지 않다.
패트리엇이나 그린파인레이더와는 달리 사드배치 문제를 처음부터 공론화한 이상, 이러한 격한 갈등은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패트리엇이나 그린파인레이더와 달리 사드배치 문제를 공론화한 것일까.
미군은 지난 2014년 3월 북한이 사거리 1300㎞인 노동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을 높은 각도로 쏘아올려 사거리 절반 가량인 650㎞를 날아가게 하는 ‘기술’을 선보이자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3개월여 후인 6월 3일 당시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반도 사드 도입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최초로 제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불과 지난해 말까지도 사드 도입 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했다. 이른바 ‘사드 관련 미국측 요청이 없었고, 한미간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사드 3無원칙이 사드 관련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사드 3無원칙이 4차 북핵실험으로 사드 공론화로 이어지다=그러나 이런 정부의 기조가 변곡점을 맞은 것은 북한의 4차 핵실험(올해 1월 6일)에 기인한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기습적으로 감행하자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촉구하며 나섰고,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정부 차원에서 결국 사드가 거론된 것.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4차 핵실험 1주일 뒤인 지난 1월 13일 대국민담화 기자회견에서 북핵실험을 언급하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 등 중국의 대북제재 협조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또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사드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국방부 역시 이때부터 사드에 대해 달라진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드는 중국의 대북제재 참여 등을 촉구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한 달여 후인 2월 7일 북한이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로켓을 국제사회의 거듭된 우려와 유감 표명에도 전격 발사하자 한미는 사드배치 논의를 공식화하기에 이른다. 또한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 다시 한 달여 후인 3월 3일 주한미군 사드배치를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이 공식 출범하며 한미간 사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런 내용이 공론화되면서 전국민의 관심은 사드 최적지가 어디냐로 모아졌다.
전자파 문제 뿐 아니라 군사 기지가 들어서면 개발 가능성이 낮아져 땅값이 떨어지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에 전 국민은 사드 배치로 인한 해당 지역의 군사 기지화를 꺼리게 됐다.
마침내 대구, 경북 왜관, 강원 원주, 전북 군산, 경남 양산, 경기 평택, 충북 음성 등 사드 후보지가 무차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거론되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마다 ‘사드 결사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철우 의원의 말처럼 사드 후보지를 극비리에 선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까지 와 버린 것이다.
이런 사태를 야기한 건 북한의 핵실험에서 비롯된 끝없는 도발, 이에 따른 대통령의 사드 공론화, 정부의 입장 변화 등의 일련의 상황이다. 전례없이 극비사항이 대중에게 공개돼버린 것이다.
이철우 의원은 지난 23일 “아무도 모르게 하는게 국방정책”이라며 한민구 장관에 대해 “지금까지 잘못된 것을 사과하고 원칙대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기자들이 ‘그럼 대통령이 사과해야 하는 것이냐’고 묻자 이 의원은 “국방을 담당한 사람들, 직접 일한 참모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을 담당한 사람들, 참모들이 무슨 잘못으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