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연애 상담글에 “답정너네요. 조언이 필요없겠네요.”라는 댓글이 연속해서 달렸다. 다소 냉소적인 반응. 글 올린 사람이 이미 ‘상대방과 만남을 이어가겠다’는 답을 정해 놓고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리자 답이 정해진 이상 무슨 조언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남한테 의견을 묻는 사람들을 요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라고 부른다.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지난 13일 공식 발표한 국방부도 ‘답정너’라는 표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국방부는 지난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가 강행된 당일 한국과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화했고, 3월 4일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위한 한미 공동실무단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달까지 한미 공동실무단이 가동된 지 4개월여 동안 국방부가 한미간 사드 배치 지역 논의에 대해 공개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사드 배치 후보 지역과 사전 교감을 갖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국방부가 사드 배치 지역 선정을 위해 미국과 밀실협의를 했다고 여론으로부터 비난받는 부분이다.
뉴스K 화면 캡쳐 |
그런데 지난 13일 갑자기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의 최적합지라고 전격 발표했다.
경북 성주군 군수는 이날 오전 10시쯤 국방부가 아니라 지역 부대장인 50사단장으로부터 ‘국방부 차관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 경북 성주가 사드 최적합지라고 발표하며 성주가 왜 최적합지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에 나섰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당일 성난 성주군 군민들 230여명이 45인승 버스 5대에 나눠타고 상경해 서울 용산 국방부를 항의 방문하자 이들에게 비슷한 설명을 하며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인체에 큰 해가 없음을 강조했다.
즉, 성주 군수에게 연락이 가기 전에 이미 국방부 차원에서 모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결정이 내려진 뒤 성주 군수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다.
13일 당일 12시경 국방부 차관이 헬기를 타고 긴급히 경북 성주로 향했지만, 성주 군수와 성주 군의회의장 등 지역 주요 인사들은 차관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군민 230여명과 함께 국방부 항의 방문을 위해 상경하고 있었다. 사전에 국방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의는 전혀 없었고, 발표 전날까지도 성주 군수에게 아무 언질도 없었음을 방증하는 정황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네”라는 대답만 하면 되는 전형적인 ‘답정너’적 상황이다.
성주 군민들은 13일 국방부 장관과의 대화 중에 장관이 성주군을 조만간 방문하겠다는 얘기에 밤 11시께 다시 성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들에게 13일 하루는 오전 성주읍 성밖숲에서 열린 사드 반대 궐기대회(예정 인원 2000여명보다 2배 많은 5000여명 참석), 상경, 국방부 항의 방문, 국방부 장관 면담 등으로 이어진 길고도 긴 하루였을 것이다.
이들은 국방부 장관의 성주 방문이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국방부의 기존 발표가 수정되거나 취소되는 극적인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방부 당국자들은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사드에 관한 한, 국방부는 답정너이고, 대통령마저 사드 배치 지역의 안전성을 언급한 이상 국방부 손을 떠난 범정부 차원의 사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사드 레이더는 마을(성주)보다 한 400m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그곳에서도 5도 각도 위로 발사가 되기 때문에 지상 약 700m 위로 전자파가 지나가게 된다”며 “따라서 그 아래 지역은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는, 오히려 우려한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전한 지역”이라며 성주 군민들의 우려를 반박했다.
이제 사드 배치 관련 사안은 한 장관의 손을 떠난 셈이다. 또한 대통령이 한 번 더 강조한 이상 절대명령의 세계인 국방부에서 재론은 있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5일 오전 10시 50분 성주군청을 전격 방문해 사드 관련 주민설명회를 실시한다.
이번 총리와 장관의 성주 방문이 사드 배치 강행을 위한 요식 행위인지, 진정성을 담은 양방향 대화인지는 성주 군민들의 반응을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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