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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발길 닿을 충남 내포를 가다…신념으로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곳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믿음과 신념으로 하여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었던 곳, 순교의 피로 죄많은 인간 세상을 씻어 구하려 했던 사제의 눈물이 깃든 곳, 처참한 죽음조차 막을 수 없었던 구원의 사명으로 길을 만들고 교회를 세워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곳. 그 곡절 많은 사연과 역사를 따라 길을 간다. 이 곳에서 만난 어느 이름없는 사람이 전했듯 세계적으로 이름이 드높은 교황의 발길이 닿게 된 것은 어쩌면 오래 전 예비됐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충남의 내포.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던 ‘내포’(內浦)는 안쪽 바다나 호수가 육지 안으로 휘어 들어간 부분이라는 뜻으로 서해가 내륙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하여 붙여진충청남도 서북부의 예산, 당진, 서산, 보령, 홍성 등 열 마을을 가리킨다. 1784년 충남 예산 여사울 출신의 이존창이 내포 지역의첫 신자가 된 후 이곳은 사대부에서 하층민까지 수많은 신앙인들의 공동체를 형성했고, 한국 천주교의 발원지이자 성지가 됐다. 신유(1801년), 기해(1839년), 병오(1846년), 병인(1866년)년의 4대 천주교 박해 사건을 모두 겪어내며 수천명의 순교자가 피를 뿌린 곳이다. 오는 8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일정과 방문이 바로 이 내포지역에서 이뤄진다. 교황은 방한 이틀째인 15일 오전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뒤 오후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인 솔뫼성지를 방문해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들에게 연설을 할 예정이다. 방한 나흘째인 8월 17일엔 서산 해미순교성지를 방문해 아시아주교들을 만나고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한다. 교황 방문을 앞두고 지난달말 방문 예정지를 중심으로 충남의 천주교 성지를 둘러봤다. 충남도청과 당진군, 보령군, 서산시 등은 교황 방문을 계기로 성지를 연결하는 순례길 및 관광 코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교황 방문이 확정된 후 방문예정지 곳곳에는 교황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환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솔뫼성지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산이라는 뜻의 ‘솔뫼’는 1836년 15세이던 김대건이 사제 수업을 받기 위해 마카오로 떠나면서 받은 신학생 추천서에도 나올만큼 오래된 이름이다. 지금도 1만여평의 널따란 대지 위에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신부인김대건이 1821년 출생하고 7살 때까지 자란 곳이다. 증조부 때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작은 할아버지를 거쳐 아버지까지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된 한국 가톨릭 신앙의 뿌리다. 증조부부터 김대건 신부까지 4대에 이른 순교자를 배출한 생가다. ‘뫼 산(山)’ 자 모양의 입구를 지나면 예수 제자 12명의 조각상으로 둘러싸인 원형 야외 공연장(‘솔뫼 아레나’)과 김대건 생가터를 왼쪽으로 두고 높이 15m의 거대한 예수십자가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 뒤편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성당이 있다. 성당은 물 위에 떠 있는 수반의 형상으로 김대건 신부가 직접 지어 중국을 오가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목조선 ‘라파엘호’를 상징한다. 매일 두 차례씩 미사가 있다. 마침 3명의 중년 여성이 십자가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솔뫼성지를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다. 서판교 ‘성 김 안드레아 성당’에서 성지답사차 왔다는 이들은 “교황이 오신다니 신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국민으로서도 기쁜 일”이라며 감격을 참지 못했다. 이곳 솔뫼성지에서는 아시아청년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교황은 이 중 솔뫼 아레나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2000여명이 앉을 수 있도록 조성된 아레나엔 한복 입은 예수상과 4대 순교자가 포함된 김대건 신부 가계의 12명이 800장의 타일로 그려져 있다. 


▲해미읍성과 해미순교성지

해미는 원래 조선 태종 때부터 효종 때까지, 15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약 240년간 군사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1491년에 축성된 성이 바로 해미읍성이었다. 병마절도사영과 병사들의 막사, 무기고 등 각종 군사시설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 때낮은 관직의 군졸로 잠깐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 시대 이후로는 일반 주민이 살던 곳이다. 병인 박해 시기를 전후로 내포지역의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끌려와서 처형당했다. 무명의 하층민 신자들까지 수천명이 생매장과 태형 등 각종 잔혹한 수단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으로 이곳 성지의 박물관에 새겨져 있다.

순교자들은 이곳으로 압송돼 오면서 ‘예수 마리아’를 외쳤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고, 그래서 ‘여숫골’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당시의 잔혹했던 처형 방법을 드러내 주는 것이 ‘자리개돌’이라는 유적인데, 산 사람을 던져 죽이던 평평한 바위다. 15세기 이후의 축성기술과 군사시설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지이자 천주교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시기 비극의 순교사를 간직한 곳이다. 해미읍성 옆으로는 성당과 박물관 등 해미순교성지가 조성돼 있다. 아시아 가톨릭 청년대회의 폐막식이 해미읍성에서 열리며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공세리성당과 합덕성당, 버그네순례길

충남 아산시의 공세리 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마치 이란성 쌍둥이처럼 비슷한 모습의 당진군합덕성당과 함께 내포지역의 가장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풍경과 어울린 유럽식의 건축물이라 할만하다. 공세리 성당은 충청 일대에서 거둔 세곡들이 보관되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 공세창고가 있던 자리에 1922년 성당이 지어졌다. 빨간 벽돌이 예쁜 고딕식 건축물이다. 옛 사제관은 박물관으로 개조해 지역의 역사와 내포지역 천주교의 박해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합덕성당은 1929년에 준공됐다. 성당을 향한 계단을 오르면 소박한 언덕이 펼쳐지고 그 곳에 올라서면 붉은 빛 벽돌과 두 개의 첨탑으로 이뤄진 본당을 만나게 된다. 


합덕성당의 뒷편에는 합덕 방죽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바닷물이 들어와 그것을 막던 것이다. 이곳에는 방죽을 따라 길이 조성돼 있는데, 한쪽으로는 솔뫼성지로 가는 길이고, 또 한 방향은 병인 박해 전 천주교 신자 수백명이 모여살며 교우촌을 형성했던 신리 성지다.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을 거쳐 신리 교우촌에 이르는 13.5㎞ 길이 바로 버그내 순례길이다. 버그내는 합덕의 구전지명 중의 하나로 때때로 범람하던 작은 내라는 뜻이다. 특히 합덕성당 바로 뒷편에 있는 합덕 방죽길은 버그내 순례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너른 평야와 이름모를 꽃향이 순례자를 반긴다. 합덕성당과 합덕방죽이 있는 사이에는 성당의 유스호스텔이 자리잡고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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