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이자 마음속 깊은 응원자”관계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여부에 6일 정치권은 온통 촉각을 곤두세웠다. 안 원장으로부터 비토의 대상이 된 한나라당은 두 사람의 연대를 야합으로 몰아붙였고, 민주당 등 야권은 ‘후보 단일화’에 끌어드리기에 여념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안-박’ 연대가 몰고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는 숨기지 못했다. ‘한나라-민주’ 양대 정당을 중심으로한 기존 정치판에 반기를 든 ‘안-박’ 연대의 향후 행보에 따라 기존 정치권의 이합집산까지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선대위원장=일단 정치권에서는 박 이사가 서울시장 선거로 추대되고 안 원장이 지원하는 시나리오에 주목했다. 안 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장 후보 양보 가능성을 시사한데 따름이다.
박 이사는 안 원장과 2000년 ‘아름다운 재단’ 설립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안 원장은 미국 유학, 포스코 사외이사 재직시에도 박 이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안 원장은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재벌 개혁과 중소기업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혁이 무엇인지 함께 교감하며 지내 왔을 것”이라는게 두 사람을 잘 아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박 이사로 단일화될 경우, 안 원장측은 출마설로 확인된 ‘안철수 신드롬’을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가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안 원장이 이야기한 300명의 멘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결되 있다”며 “자유로운 참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SNS에 기반한 새 정치 실험은 20, 30대를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안 원장의 정치 실험이 성공할 경우 여야 불문한 정치권의 새판짜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안철수 독자 출마=후보 단일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박 이사의 대중 인지도, 당선 가능성이 걸림돌이다. 박 이사는 최근 한국갤럽-중앙일보, GH 코리아-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각각 3.0%와 5.0%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 반면 안 원장의 지지도는 39.5%와 36.7%로 나경원(13.0%, 17.3%), 한명숙(10.9%, 12.8%) 등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박 이사가 안 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벽을 넘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다면 ‘안철수 신드롬’은 내년까지 계속되겠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실 경우에는 역풍에 휘말릴 공산도 크다. “한나라당의 어부지리가 걱정”이라며 안 원장의 독자노선을 우려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말은, 야권이 서울시장 선거 패배 책임을 안 원장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안 원장 개인으로도 정치 개혁에 실패하면서 ‘제2의 박찬종, 문국현’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만 남게 된다.
‘안철수 서울시장 직접 출마’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안 원장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경우, 그 영향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순히 서울시장 선거로 그치지 않고 내년 총선까지 제3세력이 세력화된다면, 내년 총선은 물론 한국 정당정치의 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안-박’ 야권 단일 후보 동참=그래서 일각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 이사가 선거 막판, 민주당 등 야권 후보와 단일화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모든 가능성을 열고 단일후보를 만드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안철수-박원순 진영의 합류를 촉구했고 문재인 이사장 역시 “출마할 경우 당연히 범시민 야권단일후보 절차에 참여, 함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이 경우 “기존 정치판과 다른 새로운 정치”라는 안 이사의 정치 입문 명분은 퇴색이 불가피하다. ‘반 한나라’ 성향의 인지도 높은 정치인 중 한명으로 평가절하 될 수 있다. 안 원장 지지자 중 20%~3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나라당 성향 유권자가 이탈하며 ‘거품이 빠지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 “양당구조의 문제점은 이쪽도 희망은 아니고 저쪽도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안 원장의 말에서도 이런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안-박’ 마이웨이=아직까지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안 원장과 박 이사 모두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기존 정치권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안 원장과, 오래 전부터 야권의 단일 후보로 거론되던 박 이사의 서로다른 정치관이, 둘의 연대를 없던 일로 만드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야권은 후보 난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김정권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이사를 향해 안 원장을 야합에 끌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내심 두 사람이 모두 출마하고 끝까지 완주해, 야권의 후보 난립을 바라는 마음의 역설적인 표현인 셈이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