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식당 브로커 유상봉(65)씨를 만났다고 시인한 총경 이상 간부가 41명에 이르고 영남지역 광역단체장과 여권 거물급 국회의원도 유씨와의 만남을 시인했다. 이들은 유씨와의 관계에 대해 ‘윗선’이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분’의 소개 때문에 한 두번 만났을 뿐, 그 이상의 인연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윗선’의 실체에 대해서는 그 분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니 밝힐 수 없다며 함구하고 있다. 이같은 해명은 유씨가 정ㆍ관계를 파고든 배후에 더 큰 ‘몸통’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유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자진 신고한 총경 이상 간부들에 따르면 유씨가 경찰 인맥을 넓히는데 도움을 준 사람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전ㆍ현직 경찰 고위직 간부들이다. 이들이 후배 경찰들에게 미리 연락해 운을 띄우고 유씨가 이들을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유씨는 처음 본 공직자에게 지역 건설업자를 소개시켜달라고 요구하거나 현금이 든 봉투를 안기고 이후에 막무가내로 청탁을 넣는 ‘무대포’식 로비를 하는 사람이었다. 단박에 불법 브로커임이 드러나는 인물을 경찰 최고위층이 나서서 선을 대줬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인맥을 과시하며 민원 해결사를 자청했던 유씨는 워낙 경찰 언저리를 들락날락해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도 질이 안좋은 인물로 ‘찍혀’있었다.
이쯤되면 주변에서 강 전 청장에게 유씨를 조심하라는 언질을 줬을 법도 한데 강 전 청장이 계속 유씨의 뒤를 봐줬다는 점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때문에 유씨가 ‘거절할 수 없는 분’의 비호를 받는 인물이어서 강 전 청장이 거부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유씨의 로비 수법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단순한 방식이어서 권력의 성층권까지 접근하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몸가짐이 중요한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탈이 날 게 분명한 현금 봉투를 들고 나타나는 유씨는 발 붙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유씨의 과시에도 불구하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폭로는 근거 없는 설(說)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유씨가 고위 공직자들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계속해놓고 상호간의 인연이 있는 것처럼 포장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우세하다. 결국 주고 받는게 확실한 ‘의리파’식 로비에 잘못 걸려든 일부 공직자들만 망신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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